김유준의 <시간과 기억>:그 90년대의 맥락과 관련하여



김복영 (미술평론가, 홍익대 교수)

김유준에 있어서 90년대란 아마 <시간과 기억>이란 작품세계로 요약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그의 작품명제는 그가 이 시대에 살고 있고생각과 삶을 지향시키고자 하는 것의 전부를 대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그는, 작품명제로 빗대어말해, 시간과 기억 속에 살고 있다고나할까.

이 말은 좀 유별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가 그렇다고 해서 기이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작품과가장 근접해서 살고 있거나 일치된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데 뜻이 있다. 일찍이 90년 봄에 그는 (예술이라는 것이 현재와 미래의 시간적한계를 넘나들 수있는 제도적 장치임을 믿고 싶다)고 썼고 같은 해 여름에는 (꿈틀거리며 지나가던 달팽이의 하얀 흔적의 ..기억은 과거.현재.미래를여행하는 나의 복합공간의 이미지 세계를 이어주는고리가 되어준다)고 말한적이 있다.

앞의 말은(시간)에 대한 관심을, 그리고 후자의 말은 흔적에대한<기억>을 소중히 하고자 한다는 것을 지칭한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장위동의 집에서 나와 신촌 작업실로 출근하면서 요 90년대의 상당한 시간들을 거의 하루도 걸르지 않고 시간과 기억속의 여로를 걸어 왔다. 걸음을 걸으나 차를 타나 그의 마음은 언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달팽이의 하얀 흔적)과 같은 족적들을 생각하고 또 뒤지면서 ..살아왔다.

이럴때면 그는 저 의식 너머에서 떠오르는나무, 꽃, 돌, 기호나 숫자를 헤아리며 열매라든가 구름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것들은 과거와 현재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기도하거니와 추억, 기억, 예감, 기대와 같은 내면적 삶을 채우는 중요한 것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주로 90년대 초기에는 이러한 몇몇 품목들이 작품에대거 등장하였지만 점차 해, 달, 별이 추가되었고근자에는 지리산, 설악산, 달마산, 무등산, 월출산,인수봉과 같은 산들에서 볼 수 있는 봉우리와 폭포그리고 사찰이 도입되었다. 이를테면 천왕봉, 대청봉, 토왕성폭포, 미황사(해남), 나아가서는 공룡능선이 사랑을 받고 있는가 하면 여기에도 솟대나 전통기와집, 삼각형과 원, 타원들을 겹쳐놓은 도식들이 애호되고 있다. ..이 일련의 것들은 모두 그의 기억속의 사물들로나타난다는 데 전반적인 특징이 있다. 말하자면 현실적 경험의 대상들이라기 보다는 그리운 먼 옛날의 추억들은 내재한 자태이거나 상당 부분이 바래지고 남은 흔적이나 기호(부호)의 자태로 작품 속에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빨강, 버밀리언, 불랙암바,그레이블루, 울트라마린 등 단일 색조의 넓은색면 위에 민화나 전통산수화풍의 산과 나무, 구름,해, 달이 그려지면 하늘과 땅 그 어디에서고 별자리를 상징하는 듯한, 점과 점을 잇는 선들이 허다하게 배치되고 이어서 하얀 솟대가 세워진다. 솟대주변에는 이를 보좌하는 삼각도식의 산이나 기와집, 아니면 지그재그선의 능선이 배치되는 경우가많다.

일체의 것들이 요약되었거나 도식적으로 전치되었으면 선과 색면으로 번안되어 나타내어졌다. 안료에 돌가루를 섞어 두툼한 질감의 벽면을 만든 후강한 명도대비는 물론 산뜻한 보색대비를 동원함으로써 그리고 사물들을 흡싸 우리의 옛 전승양식에서나 볼 수 있는 양식과 도상들로 배치함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용이하게 옛 추억을 반추하도록 할 뿐 아니라 사물들이 배치된 공간이나 자리에있어서 자유로운 선택을 허용함으로써 시간의 정상적 연쇄에서 해방시켜 주고 있다.

그는 벌써 십수년의 세월을 이러한 맥락을 추구해 오면서 그 자신만의 기억속의 시간여행을 즐기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또한 자신의 여행에 쉽게 동참케 하고 즐거움을 더해 주기도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그가 말하고 있듯이 우리로 하여금 그의 기억여행 속에 쉽사리 이끌리도록 유인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체질적으로 제도를 싫어하며 특히 작업에 있어서합리적인 것을 싫어한다. 이성의 잣대로 해석하고모든 법칙을 알아냈다고 하지만 나아진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 앞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달을 정복하였으나 그 순간 우리는 달에 대한 꿈과정서를 상실해 버렸다. 자연을 정복하였으나 이제자연은 상실해 버렸다. 자연을 정복하였으나 이제 자연은 우리를 저버리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자연의 일부라 하였으나 이제는 우리가 자연의 주인임을 자처하면서도 인간화된 자연을 보고 놀라워하는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노트). 이언급은 그가 왜 시간과 기억의 여행담을 우리에게선사하고자 하는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또한 그 스스로가 어떠한 연유에서 시간과 기억을 소중히 여기고 (시간과 기억)이라는 요컨대 탈형식적작품양식을 천착하고자 했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이에 의하면 제도와 합리화가 우리로 하여금 병들게 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작품은 따라서 제도와 합리화가 시행되기 이전의 세계를 엿보게 함으로써 이처럼 합리화된 세계와 대질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의도적이고 거의 생리적으로 그의 탈합법적 기질성을 그림 속에 부어넣고자 하였다. 그 하나의 방법론으로 채택된 것이 바로 (시간)과 (기억) 속으로 자유롭게 여행하는 방법이었다.마치 발가는대로 여행하듯이 그림을 통해 초시간적으로 기억들을 합성하여 하나의 (가상적) 기호체계를 연출해 냄으로써 그 스스로가 유년시절에 경험했던 진한 추억들을 재생해 내려는 것이다. 이를 테면 그는 이러한 수법을 통해 제작한 그림 속에서 (소나무와 산허리를 감싸고 불어오는 바람소리, 부엌 저편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나를 놀래고긴장하게 하였던 번개와 천둥소리)(노트)를 듣고자한다고나 할까.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말이다. 이를 위해 그는 작업하는 방식과 방법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합리적 절차를 떠나고자 하였다.

그의 다음과 같은 실토와 고백을 들어 보라.

(하챦은 수많은 일들이 나에게 들어와 정원에 물을 뿌리듯 하얀 천 위에 물감을 뿌리면 별이 되고 하늘이 되고 나무가 되고 나비가 되어 펄럭인다. 무엇인가를 갈구하지만 분명하게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달이 기우는 어슴푸레한 여명에 인간의 염원을 담은 솟대가 어둠과 밝음을 연결하고 땅과 하늘을 안으려는듯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밤하늘의 별들은 인간의수만큼이나 많고 그 별들은 폭포,바람, 구름을 벗삼아 세상 가득히 넘친다. 흥분한 정령들을 달래고잠재우려는 듯이 소슬대문 너머 벽들 사이에 그림이 그려진다.)(노트).

누군가가 사람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 자신과 사람들을 결국 구원하려는 행위라 했던가. 김유준 또한 적막의 고통이 자신을 괴롭히고 희망과 실망, 그리움과 동경, 혼돈과 방황속에 빠져 있는 자신을 구원하고자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기억들을 그림으로써,그리고 시간의 초맥락적 융합과 이반(離斑)을 기도함으로써 가슴 속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 행복감을느낀다고 말한다.

따라서 90년대의 김유준이 그리는 세계는 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구원의 행복감을 유발할 수 있는 기억의 초시간적 융합을 기도하려는 데 뜻이 있다. 그럼으로해서 그의 세계는우리를 제약하는 선이나 악, 제도나 규범, 윤리나교육을 넘어선 저편의 세계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그의 그림에는 자연과 인간의 구별이 없으며 비와 구름이 만나고 해와 달이 함께 한다. 일체의 합리적 분간과 변별을 떠난 초월적 세계를 보여준다.

84년에 첫 개인전을 가진이래 해를 거르지 않고꾸준히 발표해 오고 있는 그의 작품 세계가 마침내좀더는 확립된 양식과 방법을 구비하고 있어 무척반갑다. 그런 만큼 우리는 이전보다 더 새롭고 진솔한 생의 본질적 기쁨을 그의 작품들을 통해서 느낄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