敍事的 世界에서 敍情的 世界로의 이행「時間과 記憶」시리즈에 대하여



양건열 (미학박사)

작가가 추구하는 작품의 세계란 미리 예정되어 있을 리 만무하다. 끊임없는 혼돈과 방황 그리고 모색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렵게 자기만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세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창작과정의 방황과 혼돈의 세계는 작가만의 것이기에 우리는 별로 신경 쓰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신경 쓸 여유도 없다. 솔직히 말해 그러할 애정도 없다. 저마다의 삶이 번거롭기에 남들이 구차한 넋두리를 들어줄 만큼 여유 있는 시대상황도 아닌 듯 하다. 이 시대의 작가들 모두에게서 비극적인 성격을 볼 수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예술문화분야에 대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간주하는 반문화적인 경향이 지배적이다. 자본주의 발전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가져다주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정신적 영역에서는 황폐화를 가속화시키는 양상을 쉽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경제적 발전이 반드시 예술문화의 발전에 필요풍분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어제오늘만의 이야기가 아닐 듯 싶다. 아울러 다양한 시각매체의 발전으로 '볼거리'가 다양해진 사회에서 애써 순수예술에 매달리지도 않는다. 예술품의 인기가 작품의 가치보다는 외적 분위기에 따라 쉽게 좌우되기도 한다. 작가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예술세계에서 평가와 자리 매김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작품을 제작하지 않을 때조차도 끊임없이 작품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야 한다. 또한 작품의 인기와 상업성도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조화와 균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대의 작가는 작품과의 대결만이 아니라 외적인 모든 것들과 대결해야 한다.

초연할래야 초연할 수 없고 따르자니 따를 수도 없는 '오늘의 운세'가 안타깝다.

그러려니 하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예술을 한다. 무서운 체념이다. 이 같은 체념에는 항상 강한 힘이 따른다 비극적 상황은 체념을 낳고 체념의 극복은 무서운 힘을 낳는다. 예술의 삶의 불완전성에서 말아된다고 하던가. 요즈음 주변에서 그런 작가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김유준도 그런 작가 가운데 하나이다. 그가 작품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생활을 지탱해 온 잡다한 일들을 정리하고 작업공간만을 영유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작업시간을 많이 갖기 위함이라고 한다. 어찌보면 저돌적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장하기도 하다. 화가라는 직업을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은 그만의 배짱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예술세계가 확고하게 자리 잡혀가는 데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보면 그가 걸어온 길이 어떤 필연성과 예정된 조화의 길을 걸어온 듯이 보일 때가 있다. 그것도 단숨에 내닫는 것처럼, 하지만 작가 자신 남모르게 지샌 하얀 밤이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많을진대 어찌 다 헤어릴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다만 그 길섶에서 주섬주섬 고독의 편린들을 주어볼 수 있을 뿐이다. 가을날 노란 은행잎을 줍듯이 말이다.

작가 김유준의 10여년 간 제작된 작품들의 과정을 보면 어떤 일관된 흐름이나 필연적인 과정이 보인다.

그 같은 흐름은 그만의 것이 아닌 비슷한 경향의 작가들이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70년대 후반 미술계는 하이퍼 리얼리즘, 모노크롬, 미니멀, 컨셉 추얼 등 일견 매우 다양한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한결같이 이러한 사조들은 모더니즘에서 수액을 찾고 있었다. 회화의 절대조건으로서 평면성에 대한 탐구, 일체의 문학적이고 서술적인 언술 행위에 대한 알레르기적 반응, 물질과 화면구조에 대한 문신숭배, 순수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청교도적 금욕주의, 기법과 재료에 대한 실험 등은 모더니즘이 신주 모시는 듯한 유일신으로서의 미학적 패러다임이었다. 그러나 미술의 역사는 항상 도전과 부정을 축으로 하여 변모되어 왔듯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싶다는 일차적인 욕구가 작가들에게 일기 시작했다. 부권(父權)에 대한 도전은 개체로서의 자기 독립을 뜻하기도 하지만 조부모(祖父母)의 도움을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집안의 큰 싸움이라는 것도 실은 가계(家系)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유준은 현실을 텍스트로, 자연을 백과사전으로 하여, 캔버스에 형상을 실어 담았다. 말이 쉽지 미니멀 작품을 하다가 그러게 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김유준의 경우 그 같은 변화는 84년 첫 개인전 이후 시작하여 88년 제2회 개인전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내딛는 모색전의 자리였다. 90년 3회 개인전에서는 한층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화면의 구성과 처리에는 미니멀적 경향이 잔존하면서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요소들이 화면에 묘한 긴장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때의 작품경향을 카탈로그 서문에서 이일선생은 무한 공간의 물질화에서 상상적 공간으로의 이행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이전의 작품은 공간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세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다원화된 이미지들을 담아내는 삼차원적 공간을 화면에 도입했다는 의미이다. 지금 와서 보면 그 같은 공간접근의 방식은 분명 모더니즘적 세계로부터의 일탈을 뜻하는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자신을 잉태해온 탯줄을 끊고 홀로 서기에 착수했다는 선언이었다. 미니멀적 공간으로는 표현의 영역에 한계가 주어질 수밖에 없고, 변화 없는 감수성에 자꾸 이질적으로 와 닿는 금욕의 성(城)에서 과감한 탈출을 감행했던 것이다.

일단 공간접근의 방식이 달라지면서 화면에는 고립된 이미지들이 이야기를 잃은 채 고독하게 자리잡는다. "현재적인 것과 옛것, 현실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그리고 정형적인 것과 비정형적인 것 등이…몽타주의 방식을 통해 뜻하지 않는 만남의 장을 연출해 낸다(이일)." 내가 보기에 '뜻하지 않는 만남의 장'이라는 말은 오히려 이질적인 것들이 화면에 중첩되면서 오는 뭐랄까 어설픔, 낯설음, 어줍잖음, 망설임 같은 것을 수사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민화의 형상과 교통표지판, 평면과 이미지, 물질과 공간이 상호 공존한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변화를 예감하면서도 미니멀적 영향들, 이를테면 화면의 건조함, 무개성, 냉정함, 기념비적 특성들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4회 개인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번에 제작된 작품들은 따뜻한 공간, 대상에 대한 소박하고 천진한 응시, 자유롭고, 활달한 영상들이 우리에게 진지하게 이야기를 걸어온다. 저편에 홀로 똑 떨어져 존재하려던 완벽과 자족의 세계가 아니라 슬며시 다가와서 애정의 눈길을 보낸다. "화면에다 내면적 삶의 총체성을 담으려는"그의 바램이 이제 막 이루어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의 화면은 공간과 물질에 대한 실험과 그 자체 자족적 실체이기를 그치고, 사색의 공간으로서 마음껏 자신의 메시지와 체취를 담아내는 활동의 장으로 바뀌었다. 개성을 잃은 서사적 주인공이 외부세계를 모험과 도전으로 일관하여 오다가, 내면적인 것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다. 세계는 끊임없이 광활하고 무한한 저장소에 관심을 기울인다. 짓눌리고 억압된 감정을 요구했던 비개성적인 서사적 세계에서 다정 다감한 정서와 진한 인간감정의 서정적 세계로 이행하게 된다. 이제 작가는 개인의 조그마한 세계, 즉 사랑과 비운, 인생무상, 동심과 유년기의 추억, 잃어버린 전설과 신화의 세계로 나아간다. 서사적 세계의 영웅적 공간은 극히 주관화되고 내면화된 은밀한 공간으로 바뀐다. 그곳은 우리 모두의 기억과 추억이 닿는 곳이기에 작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큰 세계이다.

모든 것이 움직임을 멈춘 채 조용히 자리한다. 무엇인가를 갈구하지만 분명하게 손에 붙잡히지 않는다. 달이 기우는 어슴프레한 여명에 인간의 염원을 담은 솟대가 어둠과 밝음을 연결하고 땅과 하늘을 안으려는 듯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밤하늘에 별은 인간의 수만큼이나 많고, 그 별들은 산과 폭포 바람과 구름을 벗삼아 세상 가득히 넘친다. 흥분한 정령들을 달래고 잠재우려는 듯이 소슬 대문 너무 벽들 사이에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진다. 장롱이며 문갑에도, 베갯잇에도 이불에도 병풍에도 상보에도, 그리고 조용히 잠든 어린애의 꿈속에도 그려진다.

인간을 제약하는 선이며 악, 제도며 규범, 윤리와 교육은 저 편의 이야기이다. 그 곳에는 자연과 인간의 구별이 없다. 비와 구름이 만나고, 해와 달이 함께 한다. 자아와 대상이 분별없이 어우러지는 그런 서정적인 공간이다. 길들여지고 지성화된 세계가 아니다. 기하학적 합리성과 이지적 세계에 뿌리를 둔 사실성의 인식구조가 아니다. 원근의 배열과 명암의 법칙이 지배하는 합리적인 논리의 구조가 아니다. 형상이 법(法)없이 어우러지면서 생명성을 지닌다. 모든 것이 혼돈과 함께 하지만 그것은 질서 없는 절대적 어둠의 공간도 밝음만의 공간도 아니다. 오히려 모든 가능성과 새로움을 간직한 채 이제 막 시작하려는 여명의 공간과 색이다.

작가가 사용하는 주된 안료는 아크릴이다. 이 매제는 수채화의 효과에서부터 유화에 이르는 효과까지 그 표현의 영역이 넓고 풍부하기 때문에 많은 작가들에 의해 선호되고 있다. 오랫동안 이 매제의 사용을 통하여 작가는 그 가능성과 한계를 누구보다 손에 잘 익히고 있는 것 같다. 말끔하게 뒷마무리된 미니멀적 작품에서부터 넓은 색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공간-이미지> 시리즈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아크릴은 물과 혼합되고 맑고 선명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공간에 대한 접근방법이 달라지게 되면서 재료의 표현방법이 변화를 겪게 된다. 이를테면 이전의 표현방법으로는 무언가 인간적인 체취가 넘치고 공간 너머로 우리의 상상력을 이끌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무미건조한 표면과 얇은 안료의 층은 두텁고 뉘앙스가 풍부한 표면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한 임파스토(impasto)의 효과를 위하여 아크릴에 금분이나 돌가루를 첨가하여 바인더와 함께 혼합한다. 그리하여 화면은 작가가 담고자 한 이야기보다 더 많은 것을 간직 한다. 중첩되고 밀리고 누적되면서 화면이 긴장감을 낳는다. 이전의 형상들이 따로따로 존재하면서 고독하게 분리되었던 해체와 병열의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서로 대화를 나누는 종합과 구축의 공간으로 변한 것이다. 형상들의 대화는 보는 이에 따라 무한히 다양한 음색으로 와 닿는다. 우리는 그의 화면 앞에서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소박하고 단아한 정취는 안료의 효과와 더불어 의도되고 절제된 구도에서도 비롯된다. 앞서 그의 공간이 삼차원의 상상적 공간이라 말하였으나 오히려 그것은 아카데믹한 르네상스적 공간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작가의 사색의 장이라는 뜻에서 [그림]그런 것이다. 프리미티비즘이나 큐비즘, 민화 등에서 나타나는 '입체적인 평면'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화면의 중심 축은 다음과 같은 단순한 구조를 지닌다

근래의 작품은(3)의 구도를 기본 축으로 한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단아하면서 장식적인 느낌은 이 같은 수직 수평의 단순한 구도와 전반적으로 화면을 지배하는 좌우대칭의 안정된 구도에서 오는 것이라도 생각된다. 복잡하고 어수선한 듯하면서도 안정되고 흐트러짐이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고 하겠다. 기존의 형식(1),(2)는 평면적인 화면에서 이미지를 담기 위한 공간 모색의 구도로서 시도되었다면, (3)의 구도는 어줍잖은 삼차원적 공간요소로 일소에 제거해버리는 또 다른 평면성의 회복으로 볼 수 있다. 그 결과 미니멀적 작품에서 추구했던 평면성과는 전혀 다른 모든 것을 포용하는 평면성으로 복귀한 것이다. 더불어 색채도 활발해지고 그 표현적 성격이 강조된다. 구조를 이루는 청색계통과 황토색계통은 가장 자연스러운 색조일 뿐 아니라 상상공간의 저 밑바닥에 닿아 있는 원초적인 것과 자연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무한 공간으로서의 상상세계를 열어주는 형이상학적인 색조인 청색 삶과 자연의 근원적인 세계로 이어주는 황토색은 김유준의 서정적 세계가 추구하는 조화와 평화로움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주로 사용하는 색조가 화학적 안료와 미디움에 의존하다 보니 그 투명성과 서정성에서 충분한 효과가 약화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보다 자유롭고 서정적인 뉘앙스를 추구하는데 효과를 감소하지는 않는가 따져 보아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효과적인 안료의 사용과 바탕재(support)의 선택을 주문해 본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작가의 길이 더디고 어려운 것은 신중한 성격에도 그 원인이 있겠지만 회화자체의 형식이 지니는 탄력성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김유준의 삶과 예술의 갈등의 결과인 그의 작품을 통해 단절과 변화는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