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의 정체성 모색, 그 끝이 없는 작업



양건열 (미학박사)

한국 현대미술에 주어진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로 한국적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에 관한 것을 들 수 있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 동안 다양한 조형 어법적인 방법론과 이념적인 주장들이 제기되어 왔으며,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담론임에 틀림없다. 한국의 미술은 외국의 미술과는 달라야 하며 무조건적으로 외국 사조의 모방과 추종에 벗어나 그것을 그린 작가의 고유한 민족적 정서가 스며들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시작된 이 같은 논지는 상당히 오랜 기간 한국 미술에서 이론적으로나 작품 제작에 있어서 제기되어 왔다. 그런데 이러한 논지가 내포하고 있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를테면 무엇이 민족적 정서, 내지는 한국적 심성인가라는 문제이고 다음으로는 그것이 설혹 규정되었을 경우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의 방법상의 문제가 제기된다. 아울러 복잡한 문제로는 이러한 한국적 정서가 과연 사회구조의 변화와 생활 정서의 변화와 더불어 고정불변의 어떤 원형으로 주장할 수 있는가 하는 보다 심각한 질문을 제기된다

작가 김유준에게 있어 작업의 주된 패러다임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현대인의 삶의 다양한 모습을 과연 어떻게 해석할 수 있으며, 인간의 행복 나아가 사회와 역사의 발전이라는 틀이 과연 인간에게 어떤 의미로 와 닿는 것일까? 문화의 혼동과 무질서가 다원주의라는 이름 하에 모두 수용될 수 있을 것인가? 후기 산업 사회 내지는 영상 매체의 문화 시대에 회화의 기능과 그 존재의 가능성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세기말이라는 문화사적 전환과 새로운 밀레니엄의 도래를 앞둔 현시점에서 한사람의 예술인으로서 세계문화의 혼용과 새로운 유통구조의 매커니즘 속에서 작업의 방향과 그 의미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인가? 이 같은 문제 의식들은 바로 자신의 존재를 규정짓는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임과 동시에 사회와 문화를 바라보는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적 계기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작가의 생각이 머무는 곳은 우리 미술의 고유한 특성을 찾고 그것을 보편적으로, 그리고 현대적인 감성에 맞게 표현하는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다. 일단 이 같은 유형의 작업 방향에서 큰 어려움은 소재 선정이다. 다음으로는 화면을 운용하는 방법의 문제이다. 나아가 화폭의 분위기를 어떻게 현대적인 분위기에 맞게 예를 들면 전시될 공간이나, 감상자들의 변화된 시지각에 효과적으로 호소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근래의 작품들은 보다 소재가 단순화되고 화면은 명료해지고 있다. 민화적인 구도, 사물에 대한 단순한 접근, 보색대비를 통한 산뜻함, 단순하면서도 장식적인 효과가 눈에 두드러지게 보인다.

작가의 이런 제작 의도의 결과물로 나타난 작품의 전체적인 인상을 필자는 다음과 같이 피력한 적이 있다. 모든 것들이 움직임을 멈춘 채 조용하게 자리한다. 무엇인가를 갈구 하지만 분명하게 손에 붙잡히지 않는다 달이 기우는 어슴프레한 여 명에 인간의 염원을 담은 솟대가 어둠과 밝음을 연결하고 땅과 하늘을 안으려는 듯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밤하늘의 별은 인간의 수만큼 이나 많고, 그 별들은 산과 폭포, 바람과 구름을 벗삼아 세상 가득히 넘친다. 흥분한 정령들을 달래고 잠재우려는 듯이 소슬대문 너머 별들 사이에도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진다. 장롱이며 문갑에도, 베갯잇에도, 이불에도, 병풍에도, 상보에도 그리고 조용히 잠든 어린애의 꿈속에서도 그려진다……그의 작품에는 모든 것들이 혼돈과 함께 하지만 그것은 질서 없는 절대적 어둠의 공간도 아니며 밝음의 공간도 아니다.

오히려 모든 가능성과 새로움을 간직한 채 이제 막 시작하려는 여명의 공간과 색이다. 어떤 거대한 이야기나 작가의 강한 메시지보다는 오히려 주변의 정서를 표현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모티브를 선택하여, 제작의 방식과 화면의 구성에서 질박하면서 자연스럽게 운용하려는 절제된 표현이 역력히 드러난다. 화면에 있어서의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연출은 인위적이고 가식적인 표현의 절제, 대상들의 자유로운 배치, 현실의 공간과 상상의 공간을 넘나드는 화폭 앞에서 감상자들은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펴게된다.

우현 고유섭은 '조선 고미술의 특색과 그 전승문제'라는 글에서 한국 미술의 특징이 민예적인 것이므로 신앙과 생활과 미술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한국 미술이 서구 미술에 나타나는 장르들간의 확실한 구분과 그에 따른 장르들의 그 고유한 특성과 자율성을 추구하여 온 것과 다름을 지적한 것이며, 나아가 우리 미술이 고급예술과 저급 예술이라는 말하자면 제도 예술과 민속 예술이 명확하게 구분되기보다는 서로간의 혼용과 그 미적 가치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채, 생활 속의 예술과 예술 속의 생활이 서로 혼재되어 있음을 간파한 것이었다.

한국 미술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으로 특히 자연에 순응하는 심리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동조하고 있다. 이를테면 자연에 대한 강압이 없고 자연에 대한 순응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세부 묘사에 있어 치밀하지 않다는 것과 보다 큰 전체에 포용됨으로써 오히려 구수한 큰 맛을 이루게 된 것은 확실히 한국 미술의 특성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 평론가 이일은 70년대 한국의 모노크롬 회화가 서구의 미니멀리즘을 수용하였으면서도 가장 한국적인 미의식을 담아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특히 모노크롬 회화의 비 물질화 경향, 한국의 정신 속에 연명되는 금욕주의로서의 비물질적 항상성, 화면은 행위 하는 장이 아니라 사색하는 장으로서 형성된 것으로 파악하면서 한국의 미니멀리즘을 '범 자연주의'라고 명명하였다. 이는 우현 선생의 이론에 근거한 것으로 자연에의 순응, 자연과의 몰아적 조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전통에 대한 각성이 과거 미술의 어떤 특정한 양식 내지는 형태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정신적 재발견이며 범 자연주의적 자연관으로의 귀의에서 가능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한국 미술의 과거와 현재 속에 자연에의 순응이나 귀의의 자세는 확실히 하나의 전통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고유의 근원적 정신의 발로로서 그리고 형태와 색채에 있어서도 자연에로의 귀의라는 기본적 명제를 추구하고 있는 일련의 경향이 존재한다. 한국 현대 미술의 과제는 이렇게 포착된 전통을 어떻게 현대적 언어로 번안하는가하는 방법론의 문제이며 이들 이념적, 방법론적 탐구가 우리 나라 현대 미술의 장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문제는 밀레니엄의 전환기에서 매우 주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영상매체 시대의 문화의 특성은 복제성, 무국경적인 문화 유통망 시대, 매일의 일상 속에서 손쉽게 접하고 과학 기술의 발달을 가장 잘 이용하고, 매채의 호환성이 높아 유통이 손쉽다는 데 있다. 이 같은 예술생산과 유통 메카니즘의 변화와 더불어 야기되는 현상은 문화의 정체성이 심하게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수 천년 동안 형성되어온 오래된 켜들이 대중문화의 홍수와 상업성, 전파성의 영향 속에서 소멸할 운명에 처해 있다

정보화, 세계화, 산업화 주제는 이제 전세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21세기 우리 나라 문화의 지형 역시 이러한 흐름 앞에서 커다랗게 변화될 전망이다. 19세기 말 서세 동점의 시기이래,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작업은 민족적 자긍심을 확보하려는 차원에서, 혹은 식민지 지배 현실에 대항하기 위하여, 서구미술 맹목적인 동화 앞에서 민족 미술을 수립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 시점에서 새삼 한국미술의 정체성이라는 문제는 한국사회의 내부의 커다란 구조 변동이라는 형상과 함께 세계를 하나로 묶는 어떤 거대한 흐름 앞에서 다시 주요한 화두로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조형예술에서의 한국적 정체성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 것인가? 그 하나의 경우를 우리는 김유준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포착된 정서를 구체화시키려는 집요한 방법론적인 탐구와 조형 어법의 실험이 병형 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고 현실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보편성을 견지하는 일이다. 한국 미술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범 자연주의'라고 명명된 그 의미가 아직까지 명쾌하게 정의되고 있지는 않으나, 그것이 지닌 의미가 인간 중심적 사고체계로부터의 환경문제, 생태학적 사고의 진작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분명하며, 대량생산과 거대 규모의 경제적 생산력을 바탕으로 한 문화자본에 대해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해 주는 문화 다원주의의 추구, 문화를 수단으로서가 아닌 목적으로 접근하는 인식의 전환으로 연결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경계해야 할 것은 문화의 고정 불변한 어떤 실체를 찾아 그것을 고수하려는 어떤 본질주의적 접근이나 보편성을 도외시한 특수성의 집착이 가져올 위험이다. 앞서 언급한 고유섭 선생은 이 같은 문제를 이미 1940년대에 지적하였는데 이는 계속해서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조선미술의 특색을 찾아야 하고 조선미술의 전통을 살려야 한다.

다만 이때 주의하여야 할 것은 그것이 특색이요 전통이라 해도 반드시 전부 가치가 있고 또 고집하여야 할 것이 아니다. 그 곳에는 수승(秀勝)한 일면이 있는 동시에 열악(劣惡)된 일면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필 조선 미술의 특색, 조선미술의 전통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미술에 서든지 다 같이 있는 면이다덮어놓고 특색이요 전통이라 하여 고집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특색이요 전통이라는 것을 찾지 아니하였을 때와 마찬가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