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 속은 자연과 대상이 분별없이 어우러지는 평화의 공간이다.

-金裕俊의 미술세계를 찾아서-



이미경 (한국 공인회계사회 기획부)

월간지를 만들면서 늘 많은 사람들과 잦은 만남의 시간을 가지지만 화폭의 공간 속에서 영원한 자유인이요 창조자로 살아가는 화가를 만나는 것은 정신적 답사라고나 할까 사뭇 남다른 것이 사실이다.

처음에 화가 김유준의 화실을 찾은 것은 유망한 작가라는 추천으로 하는 통상적인 인터뷰 때문이었지만 그때를 잊지 못함은 역시 그의「시간과 기억」이라는 공통제목을 오롯하게 지니고 있는 그림들 때문이었다 그 당시 평범한 일상의 범주를 맴돌던 나는 녹음기와 카메라라는 현실을 들고 그의 화실의 문을 들어섰고, 발을 딛는 그 순간부터 조금씩 한국적인 정서를 토대로 인간의 염원을 고스란히 우주로 펼치고 있는 그의 작품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그림과 화가를 좋아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피카소 거리로 명명된 그의 홍대 앞 화실은 물감 특유의 알싸한 사방 벽을 둘러싼 원색이 선연한 그림들로 가득했다.

이 색다른 곳은 항상 시선을 붙들었고 다시금 마음을 붙들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항상 웃는 표정이 전부일 듯 한 그이지만 그림 세계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을 때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금방 딴 사람이 되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어느 곳, 어느 때라도 항상 화가로 살아가고 싶다고 되뇌이는 그의 이 말은 내겐 시간의 영겁전에는 그가 산수문전을 만은 藝人이나 황룡사의 담에 소나무를 그린 솔거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끔 한다 이처럼 그는 고대와 현대를 접목시키는 타고 난 화가인 것이다.

그는 작은 화폭의 공간 속에서「시간과 기억」이라는 제목처럼 우리들의 영겁의 세월동안 면면히 이어온 한국의 전설과 신화의 상상과 동경의 세계와 유년의 동심의 세계로 인도하곤 한다. 김유준 그 자신도 유년의 추억과 전설 등이 자신의 정서 안에서 꿈틀대고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항상 자연과 추억에 대한 경외감에 자신 그림을 출발선임을 고한다. 「글쎄요, 제 그림의 정서는 유년의 추억일 겁니다. 뒷마당인양 뛰놀던 무등산과 마을 앞 당산나무 그리고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전설과 신화, 그 모든 것이 모티브를 이룬다고 할 수 있고 거기에다가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라고 할까요?」이제 가만히 그의 화폭 속을 살펴보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눈을 감고도 그 산새를 확연하게 그려낼 수 있는 우리네 산과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푸른 소나무가 공간을 중심을 이루고, 전설이나 신화 아니 일상 속에서도 인류의 꿈과 이상으로 숭상되던 별, 달 그리고 해가 변함없이 보인다. 한쪽에는 어쩌면 평생 한 곳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꿈을 지녔을지도 모르는 떠돌뱅이 구름도 공간 속에 붙잡아 꿈을 이뤄주고 비를 내리게 한다. 이렇듯 자연에 대한 사색과 실험을 통해 화폭 속의 공간에 구체적인 재해석으로 자연이 새롭게 드러나면 마지막으로 그는 인간의 끝없는 생의 염원을 하얀 솟대에 담아서 열린 공간 우주로 높이 띄워 보낸다. 이를 끝으로 그는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고, 비로소 그의 화폭은 자연과 대상이 분별없이 이루어지는 평화의 공간으로 자리 매김 하는 것이다.

항상 한국적 색감을 연구하고 삶 자체를 그림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사람, 김유준은 처음 내 기억에 한국적인 원색의 작가였다. 그러나 적잖이 운이 좋은 탓에 그의 색감이 풍부한 그림을 자주 대할 기회를 가졌고, 그 후에는 더욱 그의 그림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워졌다. 더욱이 무수한 중간 색상의 연구를 통해 보여지는 색상의 대담함과 정교한 색 연출에 그만 질려버리기도 했다. 이제 그런 그가 다시 전시회를 갖는다.

짧은 기간이지만 자연과 인간에 대한 푸른빛 꿈과 경외로움이 또 다시 화폭 속에 펼쳐지리라.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고대의 평화세계를 구가하면서 늘 행복한 모습인 채로 말이다. 이제 화폭 가득 서정성이 녹아 흐르는 그의 작품 세계로 여럿이 함께 떠나길 바란다. 마치 오 천년의 시간여행을 위한 문화유적의 답사를 떠날 때처럼 마음이 설렌다. 화폭을 수놓고 있는 하얀 솟대를 이제 마음마다 세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