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 그 생명력을 향한 기도



롯데갤러리 초대 ‘신호재 展 _ Rumination’



깊이를 알 수 없는 쪽빛 바다의 이끌림, 혹은 무한의 영역인 우주에 대한 경외감. 짙은 푸르름으로 단장한 신호재의 화폭은 보는 이로 하여금 향수 어린 서정을 자아낸다. 한 해의 끝자락을 맞이하는 시기, 작가는 자연의 순수와 생명력을 모티브로 생의 의미를 ‘반추’한다. 사람이 숨쉬어 온 삶터, 즉 자연에 대한 작가만의 심상은 실존과 유관한 것들이다.

문명의 호흡법에 따라 그 순환의 의미를 상실해버린 현대인의 삶에서 자연과의 유기적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과정, 더불어 예술이 근원적인 인간성과 문명 사이의 간극을 메워나갈 수 있는 키워드로 작용할 수 있기를 작가는 기대해왔다. 대치되는 요소들과의 유기적 구조를 넘어서 ‘상생’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러한 논점은 예술이 담당할 수 있는 감성의 자극, 그리고 정서적인 반향을 근저에 둔다.

작가의 비구상 작업이 본격화된 시점에서 등장한 짙은 청색은 색 자체의 구체성보다 화면 안에서 구현되는 서사적 구조 안에서, 일종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체로 작용한다. 실존적 공간과 그 공간이 부여하는 가치에 대해 골몰해 온 작가의 성향에서, 청색은 생명력의 범주를 아우르는 무한의 요소이다. 그러한 무한의 공간 안으로 펼쳐진 우리네 삶의 이야기는 회화적 터치 안에서 자유롭게 부유한다. 산과 강 위로 그 속살을 드러낸 드넓은 창공, 탐스러운 달무리와 어우러진 별빛의 항연 등은 이상의 실현을 꿈꾸는 인간적인 갈망을 반영한 것에 다름 없다.

"한시의 휴식이나 여유로움이 없는 우리들의 애환, 나아가 삶의 희망이라는 막연한 감성을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반추하고자 한다. 물질문명의 편의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메마른 감성 안에서 자연이 예술의 원형으로서, 그 존재 가치의 근거로서 공존하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하는데, 이는 예술과 자연, 그리고 인간이라는 관계 안에서 상호의존의 패러다임과 상생의 의미를 반추(rumination)해 볼 시점이기 때문이다"라는 신호재 작가의 서술에서 예술이 지니는 순수성에 대한 작가만의 확고한 신뢰를 엿볼 수 있다.

금번 초대전에 선보이는 작업들은 비구상과 구상의 조화로움을 근저로 밀도 깊은 화면구성력을 구사했던 그간의 과정에 비해 다소 힘을 뺀 느낌이다. 회화적인 붓질, 혹은 각각의 색채와 도상이 부여하는 상징성보다 전체적인 화폭의 맥락에서 주제를 전달하고자 하는 중견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예술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정서적인 충만함은 낯익은 범주의 자극일 수 있지만 금속성의 기운이 난무하는 현재의 흐름에선 되려 낯설은 감각일 수 있다. 위안과 안식이라는 어찌 보면 먼 훗날의 이야기로 인식될 수 있는 우리네 감성을 본 초대전을 통해 조금이나마 끌어낼 수 있기를 바라며, 한 해를 갈무리하는 시점에서 개인적인 삶을 담담히 관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롯데갤러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