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청색의 역설(逆說)



정금희 (미술평론가. 전남대학교 교수)



신호재의 작품은 현실과 현실 속에 내포된 초현실을 청색의 환타지로 한데 불러 모은 듯하다. 화면 중앙이 청색으로 채색돼 있고 그 주위를 흰색이나 노란색 테두리로 둘러싼 작품은 현실과 가상의, 혹은 유(有)와 무(無)의 세계를 먼저 분별해 놓는다. 범 우주의 하늘을 연상시키는 청색 구체 안에는 온갖 생명체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것들은 연꽃과 정화수, 오리, 새, 산, 해, 별, 달, 물고기 등으로 화면 곳곳에 배치돼 민족성에 내재된 오래된 정서를 의식의 수면 위로 띄워 올린다. 대상들은 사실적 묘사가 아닌 비구상으로 단순화시켜 존재의 현대성을 잃지 않고 있다. 시원을 알 수 없는 시공의 흐름 속에서 작가가 머무르고 있는 한 지점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 푸른색처럼 시리고 생생하다.

“무한히, 푸른색은 탈출한다.
그것은, 엄밀히 빛깔이 아니다.
그보다는 색조, 기후, 공기의 특별한 울림....

우리가 마시는 공기,
우리의 얼굴이 움직이고 있는 허공의 실체.
우리가 통과하는 공간.
이 모든 것이야말로 보이지 않은
지상의 푸른색이다”.

장 미셸 몰프와의 시 (푸른색 이야기)중에서

‘엄밀히 빛깔이 아니’며 ‘색조, 기후, 공기의 특별한 울림’인 청색은 ‘허공의 실체’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이 공간은 푸르다. 그러나 신호재는 공간 안에서 보이는, 동력의, 당당한 푸름을 넘어 동시에 뒤편을 주시한다. 동양적 순환의 사고에서 비롯된 음양의 원리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하늘과 땅, 산과 바다, 여자와 남자로 이루어진 세상은 상생의 관계에서 조화롭게 순환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흰색과 대비를 이룬 청색은 하늘을 상징하고, 흰색은 대지를 상징한다. 청색 사이사이에 노란 색점들은 밤하늘의 별밤을 연상시킨다. 그 하늘 아래 우주의 생명체들은 숨쉬고 나날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세상은 존재하고 있으며 강물이 흐르듯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고 있으며 우리들의 인생 여행도 진행형으로 전개되어 가고 있다. 신호재의 밤하늘을 상징한 짙푸른 청색에서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작품인 (별이 빛나는 론 강변의 밤 풍경), (밤의 카페 테라스)에서의 그 밤하늘이 연상된다. 순수하고 청렴한 청색으로 채색된 하늘에서 별들의 찬란함을 볼 수 있듯이 신호재 작품의 일부에서도 그 유사함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 속 청색으로 뒤덮여 있는 하늘 아래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전개되고 있다. 인생이 무엇인가를 화두로 삼고 찾아 떠나는 이들, 또는 세속의 부와 명예, 권력을 추구하며 발버둥치는 이들, 또는 사랑을 갈구하는 이들 등 무수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살아가고 있다. 그 안에는 자식 사랑에 정화수를 떠 놓고 매일 기도하는 우리 어머니의 모성애도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무구한 삶의 형태에서 아가페의 사랑을 화면에 담아내어 잔잔한 감동을 주고자 한다.

작가는 현대인들이 물질 만능주의에 사로잡혀 황폐해 가는 감성에 ‘사랑’을 처방전으로 내놓고 싶은 것이다. 그 사랑은 인간애일수도 있고, 모든 생명체에 대한 생명의 존엄성을 되찾는 묘약일 수도 있다. 요즘 우리 현실에서는 흔히 가족 간의 사랑, 부부와 자식 간의 사랑 등이 소원해 지고 있음을 본다. 작가는 전통적인 소재인 정화수와 어머니의 지극 정성한 기도, 부부애를 상징하는 한 쌍의 새와 오리, 생명력을 나타내는 금붕어, 혼탁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순수함을 간직한 고귀한 연꽃과 변하지 않는 굳은 절개의 교목 등을 되찾아 고귀한 기억을 일깨워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소재는 비구상으로 형태를 알아 볼 수 있게 묘사하면서 화면 구성은 청색과 흰색으로 이원화시켜 추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추상이란 사실적인 기법으로 대상을 표현하는 그 차원을 뛰어 넘어 무구한 가능성을 주고 있기에 폭넓은 해석이 가능하다. 화면은 수직적인 이원화로 구성되어 있어 무한한 공간감을 주고 있으며 가끔 수평적인 선이나 새가 날고 있는 모습 등을 묘사하여 수직과 수평을 적절하게 배치시켜 안정감을 주고 있다. 그는 화면에 모래, 석고 등의 다양한 재료를 혼합하여 화면에 재질감과 입체감을 더해 주고 있으며 이러한 실험 제작은 현대 미술과 동행하고 있다.

신호재 작품 경향은 아동미술에서 나타난 특징적 기법인 열거식 기법이나 시․공의 변화성 표현과 유사하게 나타난다. 어린 아이들은 미술 교육을 받기 전에 그들만의 시각에서 바라본 대상을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곤 한다. 그중에서 그들이 자주 사용한 표현 기법인 대상을 화면에 열거시킨 기법과 유사하게 신호재 작품에서도 화면 곳곳에 나타나 있다. 즉 밤하늘, 나무, 새를 화면에 나란하게 배열한 것이다.

또한 아동들은 한 대상을 단편적으로 정지된 표현이 아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연속적인 표현을 시도한 기법으로 시공의 변화를 가져오곤 한다. 작가는 아동들이 교육 받기 전에 사용한 기법을 자신의 화면에 적용시켜 재현해 냈다. 언뜻 보기에는 대상을 미숙하게 처리하여 기교가 어설프게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어지러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눈에 보여진 대상 그 자체를 반영하여 재현한다는 의도를 담았다. 즉 작품에 본질적으로 순수함과 청정함을 깃들여 표현하고자 함일 것이다.

더불어서 신호재의 작품은 청색을 사용하여 무한한 공간 속에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의 소중함을 상징화시키고 있는데, 그의 작품 속의 청색은 모든 것을 내포하는 존재의 가치성을 부가하는 반면 아무 것도 없는 허무, 공(空)을 담아내는 역설(逆說)의 색채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