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용의 작품세계



시각적 일루전과 평면성의 사이



신문용에게 있어서 ‘바다’는 세계 이해의 창이자 하나의 화두다. 그는 약 30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 바다와 씨름을 해 왔다. 바다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말없이 넘실거리는 바다, 기상 조건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표정을 달리하는 파도는 그에게 있어서 소재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자체 주제이기도 하다. 소재란 자연대상으로서의 바다와 파도를 이름이요, 주제란 리듬에서 파생되 는 회화의 한 요소를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그림은 실상 자연 대상으로서의 바다와 파도를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그러한 소재를 빌어 화면의 내적 질서를 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의 그림이 ‘의사 자연(pseudo-nature)’으로 간주되는 이유다. 즉, 그의 그림은 자연을 그린 구상화라기보다는 한 편의 추상화抽象畵에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다.






Untitled 110 x60cm Oil on canvas (2012)








Untitled 45 x 45cm acrylic color (2012)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의 그림은 바다를 상기시킨다. 이것이 바로 그의 그림이 지닌 이율배반이다.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미지다. 아득히 보이는 수평선에서부터 밀어닥치는 파도와 흰 이를 드러낸 포말들, 그 원근법으로 처리된 시각적 일루전이 바다를 상기시키는 주요인이다. 캔버스에 서너 차례에 걸쳐 정교하게 밑칠을 하고, 밑칠이 마를 때마다 매번 사포질을 하여 캔버스의 바 탕 면을 반질반질하게 조성한 뒤, 나이프를 사용하여 파도를 정교하게 그려 나가는 고유의 기법은 매우 테크니컬하다. 그것은 지나칠 정도로 기계적이어서 방법론상으로 볼 때는 그림을 그릴 때 작가의 감정이입이 없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결 과적으로 볼 때 그의 그림은 관객에게 서정적인 느낌을 준다. 감정이입의 배제가 불러일으키는 서정성의 확보, 이 모순이 바로 신 문용의 그림이 지닌 신비가 아닌가 한다. 그가 작품의 타이틀로‘무제(Untitled)’라는 이름을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는 까닭도 추상과의 연관성을 스스로 용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의 그림은 자연의 모사(copy)라는 해묵은 방식에서 벗어나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신문용의 그림은 화면의 내적 질서에 의한 자율성(autonomy)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것이 지난 25년간에 걸쳐 작업을 추동시킨 원동력이다. 그의 ‘무제’ 연작은 처음에 격자나 가는 선에 갇힌 바다에서 시작했는데, 그것은 일루전과 평면성 사이에서 파생되는 시각적 모순에 대한 자기 동일 증명이었다. 이 최초의 방법론은 그의 작품이 개념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 해 주는 증거다. 신문용은 이러한 요소들을 근간으로 하여 다양한 변주를 꾀해 왔다. 그것은 대략 색채와 물결의 표현, 그리고 캔버스의 형태에 대한 변주로 요약된다.
·색채는 청색을 기조로 하여 적색, 노랑, 녹색들이 하나의 화면에서 어우러지거나 혹은 단색조로 표현되는 것이 상례다. 또한 수평선의 위, 즉 하늘 부분에 마치 옅은 구름이 낀 것처럼 표현되는 경우도 있다. 물결의 표현은 가장 많은 변화를 보이는 부분인데, 갈매기 모양의 파장이 크고 뚜렷한 형태에서 잔잔한 터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주를 보여 준다. 캔버스는 기존의 사각 캔버스를 비롯하여 원형, 마름모꼴 등등이 사용되고 있다.




Untitled 100 x 60cm Acrylic color (2000)








Untitled 80 x 60cm acrylic color (2012)





·최근 몇 년간 신문용은 바다 일변도의 작업에서 벗어나 인물이나 구름, 폭포 등등 소재의 폭을 넓히려는 시도를 보여 준 바 있다. 그러나 바다 그림의 인상이 워낙 강한 탓인지 그의 후속 작업은 미처 본격화하지 못한 느낌이 짙다. 차제에 폭포를 그린 「무제」 (2006)에서 볼 수 있듯이, 고전을 현대화한 그의 시도는 바다 그림에서 다져진 회화적 기량이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본다.
바다 그림은 작가 자신도 인식하고 있듯이 이미 원숙한 경지에 도달해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것 같다. 그럴 때 폭포 그림은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바다의 표현에 기울여 온 신문용의 노력과 거기에서 체득한 회화적 역량이 새로운 소재를 만나 또 한번의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윤진섭 (미술평론가)

문예바다 2014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