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세계에서 열린 세계로

월간금호문화 조 헌 영



물결 작가 신문용(4l 목포대교수) 언제부터인가 물결 시리즈로 우리 곁에 다가온 그는 이젠 그의 이름만 들어도 넘실거리는 녹수피란(綠水波瀾)을 연상케 한다. 신문용 교수의 방은 사방에 물결그림이 널려져 있었다. 연구실을 겸한 작업실 이라고 한다. 온벽에서 물결이 너울거려 열려 있는 문을 향해 밀려 올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바다는 옆으로 퍼지기를 좋아하고 늘 움직이죠. 바다는 또한 자기 확대를 주장하고 자기 한정을 싫어합니다. 바다에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처럼 도로라는 것이 따로 없고 바다 자체가다 통 할 수 있는 길이죠. 이런 철학을 담고 있는 바다를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작품 속에 나타난 물결(WAVE)은 아마 이런 동경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의 물결과 만난의 동기를 듣는 순간 “인생은 연속적인 두개의 순간에도 서로 다른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 물결"이라고 말한 J.틴달의 말이 와 닿았다. 신문용이 말한 바다의 확대성과 바다 자체가 모두 통 할 수 있는 길이라는 설명은 물결의 흐름에 자신의 인생관과 화력을 올려놓음으로써 무변광대한 세상을 작은 화폭에 담아보겠다는 화가의 勞作에 대한 일념이라 생각되었다.

“저는 8O년도부터 물결만을 테마로 계속 그려 왔습니다. 물결을 그리면서 느낀 것은 액션 폐인터인 잭슨플록의 ‘회화는 곧 자기발견이다'라는 말에 많은 공감을 가졌어요. 곧 '물결'을 그리다 내 자신을 발견한 것이죠. 이것이 발전하다 보니까 ’자기발견은 자기표현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 역으로 입증 되더군요. 제가 말하는 '자기표현' 이란 내마음속에 쌓여있는 본질적 욕구를 분출하는 것이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제 자신에 대한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물결을 그려온 것은 물결이라는 촉매를 통해 제 자신의 생각내지 정서를 표출함으로써 존재의식을 뚜렷이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말한 '자기표현'이라는 견지에서 볼 때 다른 이들도 자신의 작업을 '자기표현'이라 자신 있게 얘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우리는 주변에서 자기표현의 여러가지 유형을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심적 상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주의자들, 자신의 생각을 주제나 타이틀을 통하여 의도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주의자들, 그리고 자신의 열정을 어떤 매개체 없이 직접 보여주는 추상표현주의자 등 각종의 부류가 있다. 서양화가 신문용 그는어떤 부류에서 '자기표현'을 하고 있을까? 그의 '자기표현'은 자연을 소재로 한다. 그 소재는 어디까지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자연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의 원천으로써 작용하고 있는가하는 맥락에서 그의 부류는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 볼 때 이 작가의 '물결 시리즈'는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제가 '물결'을 그리게 된 것은 솔직히 말해 우연한 계기 때문 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분들처럼 테크닉이나 시적 감수성에서 뛰어나지 못하다 생각 합니다. 그래서 대학생활 4년 동안 그림에만 매달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맹목적인 화력에 대한 투구였죠. 대학졸업을 앞두고 柳永國선생의 '山시리즈'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구상계통에서 비구상으로 전환했습니다. 그 이유는 내 나름대로 실험 작업을 해봐야겠다는 사명감에서였지요. 그때 감수성 있게 접한 것이 바로 '개념예술' 이었습니다. 저의 초기 작품에서는 붓으로 물감을 덧칠하는 기법을 많이 사용 했습니다. 붓질을 하다보면 곡선이 나옵니다.

저는 직선이 비약과 의지, 도전과 물질주의미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곡선은 정체와 정감, 눈물, 여유 등 정신주의 미를 띠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런 까닭에 곡선에 정을 많이 느낍니다. 그러한 곡선의 붓질을 계속 하다 보니까 붓의 원초적인 반복 기법에서 칠한 곳과 칠하지 않는곳의 관계가 유지되더군요. 이러한 관계 유지 속에서 빛의 효과가 탄생 되더군요. 제가 빛에 대한 집착력이 강한 탓인지 빛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 칠한 곳과 칠하지 않는 곳에 막대로 긁어내는 기법을 사용 했습니다. 그래 이렇게 얻어지는 효과를 어떤 대상에 넣어 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밝고 어두운 관계를 유지시키면서 빛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물의 표면이라 생각되더군요. 더 나아가 이 물결의 그림에서는 바다의 직선적 물결보다는 강이나 호수의 부드러운 곡선 물결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연은 언제나 직선을 회피하거든요. 이렇게 물결을 자주 대하다 보니까 연한 색을 띠면 은은한 파장이 나오고 어떤 강력한 색을 띠면 강력한파장이 나오더군요.“

어떤 평론가는 그의 물결 그림을 보고 목포가 그의 생활 터전이며 사색의 둥지라는 데서 바다를 주제로 한 그림이 나왔지 않았을까 했는데 그의 파도는 바다를 보고 연상한 것도 있지만 그의 이미지세계의 투사에서 나왔음을 신문용은 강조한다. 곧 그의 작품세계는 구체적인 풍경의 서술이 아닌 사물의표면 (물결)에 담겨진 일련의 표정들과 그 속의 내밀한 감수성을 우리들 앞에 자연스럽게 제시한 것이라 하겠다. 물결을 통해 그의 내적 세계를 가시화 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생각된다. 아마 그는 물결의 세계를 통한 스스로가 또 다른 가상의 세계로 나름의 밀도의식을 표출시키면서 접근하여 가고 있는듯하다.
“흔히들 주변의 가까운 벗들은 너는 왜 파도만 그리냐, 파도에 원수졌냐'하고 농담을 하곤 합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착잡한 심정이 들고, 보다 발전된 물결을 만들기 위해 잠을 설치기가 일쑤죠. 저의 물결시리즈는 지금까지 진행된 과정을 살펴 볼 때 세 시기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 제 1기는, 붓의 원초적 기법을 이용한 덧칠 하는법,
  • 제 2기는, 수평선의 태동으로 인한 상하 세계의 표현법,
  • 제 3기는, 수평선을 연결한 물결의 확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저의 초기 물결에서는 단편적인 물결 테마위에 시작적인 변화를 주기 위해 바둑판모양의 눈금이나, 혹은 창틀을 캔버스에 넣기도 하고, 또 화면의 균등한 변화를 주어 빛의 변화에 의한 바이브레이션을 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러한 기하학현상이 극명한 대비 관계도 오래 다루다보니까 단조롭고, 생동감이 상쇄되더군요. 여기에서 한 단계 발전 된 게 수평선의 태동과함께 '물결'도 아침, 한낮, 석양 때마다 느낌이 다름을 이용하여 색상차에 따라 파도에 시간성을 주었습니다. 이 단계가 저의 물결 시리즈 제2기입니다.“









Woman. chinese ink on paper.72 x 53cm. 1987













Woman. chinese ink on paper. 65 x 53cm. 1988



신문용의 물결은 작가의 부단한 재충전의 노력에서 보는 이들의 호감과 청야함을 사기에 충분하다. 흔히 자연의 한 단면을 표상화하는 작품은 추상적인 것이든 사실적인 것이든, 작가가 의도하는 모티브를 압축시키지 못한 채 형태 우위론적 수준에 머물기 십상이다. 즉 이것은 자연이라는 무거운 개념에 얽매어 그것을 심미화 시키거나 묘사하는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자연을 대상으로 한 대부분의 그림이 처음에는 청초한 느낌을 주나 시간이 더해감에 따라 안이하고 틀에 박힌 작품 제작 태도로 인해 좋은 인상이 퇴색 되어 지기 쉽다는 것이다. 이 같은 원인은 작가의 무성의한 자연묘사, 개안된 눈으로 자연물을 재해석하는 능력 부족 등이 빚어내는 주요인이 아닌가싶다. 신문용은 일상적인 작가들의 오류에서 벗어나 개안된 눈으로 수평선의 태동과 물결의 불규칙성을 발견, 그의 작업은 전환기를 맞게 된다.
“수평선이 나오니까 수평선 위, 아래의 서로 상충되는 두가지 요소가 어떤 대립의 과정을 거쳐 독특한 이미지의 세계로 자립적인 틀을 갖추더군요. 여기에서 저는 새로운 출구를 만나게 된 것이죠 물결 작업에서 수평선 윗부분을 작게 한 것은 위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자연의 현상을 모두 보여주는 것 보다 수평선 아래의 파장을 통해 상상을 초월하게 함으로써 수평선 위의 공간에 보다 더 많은 상상력을 가지게 하는 것이죠”
그의 홍익대 시절 은사이며 미술평론가 이기도한 李逸씨는 한 단계 발전된 그의 물결을 보고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일찍이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미셸 라용은 '추상풍경화'라는 새로운 용어를 세상에 내놓은바 있다 보통생각으로는 서로 상충되는 이 두낱말을 묶어 만들어낸 이 단어는 언뜻 듣기 에는 매우 생소하고 모순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모순된 것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우리에게는 지극히 친근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풍경화가 사실적이고 서술적인 회화라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사실성이 배제된 풍경화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의 구체적인 정경은 자취를 감추고 범자연적인 호흡이 화면에 숨 쉬게 되는 것이다. 그의 물결시리즈를 위해 ‘추상풍경화’라는 개념을 미셸라옹이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착각 이 든다. 그는 ‘물결’이란 추상풍경화를 8O년도부터 지금까지 4백여 점을 그려왔다. 작가의 작업량은 어쩌면 작품의 심도와 비례할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신문용은 勞作의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에는 노동집약적인 투혼이 섬세함과 치밀함으로 베 어 있고 폭넓게 충전된 에너지가 충만 돼 있는 것 같다.
“물결의 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는 많은 손질이 필요 합니다. 처음 바탕색을 칠한 후 말려서 그것을 사포질하고 이러한 밑바탕 채색 과정을 다섯 번 정도 반복한 다음 채색 작업에 들어갑니다.”

그가 그의 작품과정에서 투여하는 고도의 노동집약적 과정의 태도는 언뜻 보기에는 화판위에 붓질과 긁기 작업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상은 사물의 내면과 어우러져 작가의 혼과 사물의 표면이 작가의 노고에 응답하는 內省세계의 조화라 할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작업 과정 속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한다. 전반적인 이미지를 대상으로 했을 때 그의 작업에도 나름의 과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작가가 추구하는 "물결" 테마와 큰 상관성을 갖는 것은 아니라 해도 작업의 결과성으로 나타난 기법상의 한계성 때문이다. 이를테면 지극히 제한된 캔버스에서의 물결 논리의 전개, 이미지 발생을 위한 원초적 붓질에서 오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일련의 고정화 현상 등 많은 제약성이 그와 물결의 세계에 이간질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좋게 표현한다면 작가의 보다 적극적인 변화에로의 의지와 노력의 표출이라 하겠다. 이러한 작가의지를 미술평론가 金仁煥교수는 아래와 같이 부추긴다. 바다나 강의 물결을 바라보면 마음의 沈靜과 淨化를 얻을 수 있다고들 한다. 사실 그렇다 그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아득한 太古를 간직한 듯한 바다는 바라볼수록 신비스럽고 우리의 의식의 내면을 투과하고 침투해 들어오는 어떤 힘을 지닌 듯싶다. 그 묵시적인 현상이 형상이 되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하나 방향을 달리하는 여러 각도에서의 반사광이 실제로 ‘물결'의 실체를 이룬다. 그러니까 작가는 ’빛'을 그리고 있는 셈이라 할까 나타났다가 부서지며, 그 존재의 物性조차 촉감으로나 감지할 수 있는 물결의 세계는 적막한 관조의 세계이다. 그 광대무변함은 지상에 있는 어떤 것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닫혀진 세계에서 열려진 세계'에로의 전환에 대한 의지를 우리는 물결에서 배우려한다. 아무튼 그가 안고 있는 과제에도 불구하고 그가 추구하여 나아가는 "물결"의 세계는 아직도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한 연유인지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경향이 참신한 젊은 작가를 선발해 한 달 동안의 전시기회를 주는 "이달의 작가展“에 ”2월의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는 현대국립미술관전시회를 하면서 미술평론가이신 유준상씨와 만났어요. 그분이 저에게 '앞으로 물결 계획이 어떠냐'고 묻길래, ‘저는 3~4년 후 끝내려고 생각 한다'고 말하자 대뜸 ’저하고 하는 일을 바꾸자'고 하는 거예요. 자기가 하면 무궁무진 할 것 같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저에게 제시 하더군요. 덧붙여 말하기를 정 작품의 구상이 한계에 부딪히면 흰 캔버스위에 수평선 하나만 그려 놓으라는 거예요. 그분 말씀 따라 해 보았지요. 정말 비전이 제시 되는 거예요. 거기에서 얻어진 게, 이번 6월 문예진흥회관 전시실에서 선보일 ‘물결'의 확장입니다.

“저는 이 시도를 저의 물결시리즈 제3기라생각합니다”

그는 과거의 원초적 기법의 시도를 계속함으로써 자연적인 것이 아닌 인위성에 가까워짐을 느낀다. 그리고 그가 늘상 생각해 왔던 파도의 무한계성을 염두에 두고 여러 캔버스를 겹쳐 물결의 확장을 시도한 것이다. 즉 이 방법은 각 작품의 수평선을 이용, 수평선을 서로 연결시켜 화면 팽창의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수평선의 위아래에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얘기할 수 있어요. 곧 철학적으로 표현한 다면 수평선 위는 형이상학적 세계라 할 수 있고 아래는 형이하학적 세계죠. 보는 사람이 수평선을 가치 기준으로 놓고 각각 위, 아래의 세계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많은 얘기가 나오지 않겠어요. 6월 전시회가 끝나면 다음 시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의 말을 듣다보면 이 사람이 어떻게 이런 치밀한 작품을 그릴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 까닭은 말하는 어투나 세상의 관심사에 좀 어수룩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작가는 자기의 작품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표현이 서투른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신문용은 자기가 추구하는 작품세계에 관해서는 달변이요, 모르는 게 없을 정도다. 아무튼 그가 안고 있는 과제에도 불구하고 그가 새로이 추구하여 나아가는 물결의 세계는 그 방법론이 색다르고 복학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우리에게 많은 암시와 시사를 남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보다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표현법을 구사해가는 오늘의 예술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그의 이와 같은 방법론의 전개야말로 시대적감각의 부응이 아닌가싶다. 또한 그의 캔버스확장을 통한 물결의 파노라마는 그 나름의 개성을 천착시켜 가려는 작가 의 뛰어난 직관력의 한 전개라 믿어진다.
“물결을 그린 지 8년이 되어 가지만 매 전시회마다 같은 작품은 결코 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내 자신의 발전을 위함도 있겠지만 단일 테마인 "물결"의 한계성을 불식시키기 위함도 내포돼 있다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 아직도 물결에 자신이 없습니다. 새롭고 완벽한 물결이 나와야겠다는 것이죠. 다시 물감을 뿌려보고, 긁는 방법의 전환 등 다시 원초적인 것부터 새출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느 작가도 새로운 작품 구상을 위해 혼신의 노력하겠지만 그는 새로운 물결을 찾기 위해 긴장과 압박감에 많은 스트레스가 쌓인다한다. 그런 스트레스 탓인지 하루에 두갑반의 줄담배를 피운다.
“호흡기가 좀 이상해 병원엘 갔더니 담당의사가 저더러 당신 평생의 피울 양을 다 태웠으니 이제 그만 끊어라 하더군요.”
그의 이 같은 갈등은 보통사람들의 견해에선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대학교수니까, 그 림 그리지 않아도 삼시세끼 밥걱정 안할 것이고 그동안 벌어서 눈비 피할 수 있는 집 한 채 있으니 무슨 걱정이냐고 얘기 할지 모른다. 그러나 작가가 자신의 그림 세계를 중단한다는 것은 죽음임을 그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작은 의미에서 "자기표현"의 단계보다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참다웁고 아름다운 자신의 내면 풍경을 새로운 견해로 제시하고 싶은 것이라 하겠다. “저의 어린 시절에는 그림의 별다른 재질은 보이질 않았어요. 그림에 관심을 둔 것은 광주서중 때였죠. 호기심에서 친구가 다니는 화실을 가보니 상당히 꿀리더군요. 그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 조대부고 미술부에 들어가 그림의 묘미를 알게 되었죠. 그때 주로 그렸던 것은 인체소묘였죠. 그림만 그리다 보니까 대학진학이 은근히 걱정되더군요. 아버지께서 는 서양화 보다는 동양화를 하기를 원하셨죠. 그래 高3때 요강단지 방안에 들어다 놓고 두문불출 하고 시험공부만 했죠. 제 자랑이 아니라 그 당시 시험 쳐서 홍익대 미대 간다는게 보통 어려운 것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동양학과로 입학했어요. 그러나 저 나름대로 서양화에 대한 복안은 갖고 있었죠. 일학년 성적이 B학점이 이상이면 다른 과로 전과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죠. 전과를 한다니까, 그 당시 동양학과 학과장을 맡고 계시던 천경자선생님이 무척 안타까워했어요. 붓끝놀림이 좋다고 평소에도 칭찬을 많이 하셨지만 솔직히 동향이라서 저를 더 예쁘게 봐 주신 것 같아요. 그때 익힌 솜씨로 지금도 시간 나는 데로 붓으로 인체 누드드로잉을 그리곤 합니다.

“대학을 마치고 바로 군 입대를 했습니다. 군대란게 저에게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곳은 못되었습니다. 제대를 하고 그림을 다시 한다는 것이 어렵게 느껴져 한때는 취직을 하려고 맘먹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에게 큰 도움을 주신 분이 대학스승이신 李逸교수시죠. 그분 말씀이 '네가 선택한 것이 그림이다. 왜 사내대장부가 입지를 세웠으면 한길로 나가야지 외도가 무슨 말이냐'고 꾸짖으시는 거예요. 그런 여러분의 덕택으로 대학원엘 진학했습니다. 본격적인 탐구 작업과 더불어 물결의 기초작업에 들어간 시기라 하겠습니다”

신문용의 그림에 대한 재질은 그가 말하듯이 천부적인게 아니라 많은 시련과 경험을 통해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자신의 3O대 초반기를 방황의 시기라 말한다. 방황의 원인은 자신의 그림에 대한 방향 설정의 부재에서였다. 아마 그에게 있어 이런 방황의 시기가 없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그림에 대한 열정이 강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되고 본인도 그것을 인정한다. 그의 그림이 안정되기 시작한 것은 결혼과 함께 목포대에 정착하면서 이다. 그의 그림에 보이지 않게 결정적인 공로를 끼친 것은 그의 부인 鄭有善씨이다. 그는 안정된 가정을 가지면서 잡다한 세상사를 떨쳐 버리고 그림에 대한 열정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저의 방황의 종결에 저의 집사람이 많은 공헌을 했지요. 어려운 살림 꾸려야지, 난해하고 알아주지도 않는 그림 그리는 남편 뒷바라지 해야지, 고생을 많이 했을 겁니다. 집사람도 처음에는 제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시간이 약인 탓인지 지금은 오히려 저 보다 제 그림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곤 합니다. 집사람 뒷받침이 없었으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얻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는 특별한일이 없는 한 아침 9시 출근하여 저녁8시까지 강의 시간을 빼놓고 캔버스 앞에 앉아있다. 그리고 이 시간을 가장 행복해한다. 지금 그에게 있어 물결은 적어도 하나의 신앙임에 틀림없다. 그는 지금까지 개인전 4회(국내 2회, 일본 2회)를 가졌고, 7차례에 걸친 국제 초대전 그리고 백여 차례에 걸친 각종 단체전, 초대전을 통해 그의 작가적 역랑이 이미 평가 되어져 있다. 특히 88올림픽대회 기념스포츠 미술엽서(야구부문)에 선정되고 국내외적으로 좋은 호평을 받았다. 이것을 고려할 때 우리지역에서 그의 작품에 대한 인식은 중앙에서의 그것보다 덜 된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는 이지역이 동양화의 전통성과 서양화의 구상계열이 근간을 깊이 두고 있는 까닭 도 있을 것이다. 또한 현대미술에 관심과 애정이 보편화되어 있지 못한 것도 한 이유라 하겠다.
"제가 좀 주변머리가 없는 편이죠. 다른 분들처럼 이 지역에서 전시회도 많이 갖고 제 자신에 대한 인식도를 많이 높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요. 마음속에서는 모든 분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드리고 싶은데 표현력의 부족과 소위 처세에 둔감하다 보니까 주변분들에게 저의 그림이 널리 소개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느 소설가의 작품중의 일화가 떠오른다. 한 대서예가가 젊은 시절 탁주를 마시기 위해 자신의 작품을 남발한다. 어느 정도 노년기에 들어 서법에 득도한 이 대서예가는 젊은 시절 객기로 쓴 자신의 작품을 부끄러워하여 많은 돈을 치러 가며 작품을 회수, 전 생애의 작품을 불태워 버린다는 내용이 있다. 일화의 내용을 유추한다면 작가정신의 한단면의 피력이라 생각된다. 신문용, 그는 제자들 에게 프로의식을 가져라 당부한다. 즉 작가는 주변의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의 창작 세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화가 신문용을 만나면서 "좌절"과 "의지"라는 두 단어를 접한다. 그의 삶의 역정이 그렇듯이 좌절 속에서 자기 세계의 에네르기를 충전 시켜 수평선을 태동케했고, "의지"속에서 "물결"만을 고집해왔다. "좌절"과 "의지“는 우리의 일상적 삶과 맞닿은 부분이라는 점에서 그의 물결 파노라마는 호소력을 가진 주제이기도 하다.
신문용 그의 “좌절과 의지" (수평선 위, 아래 개념), 이 같은 첨예한 두개념의 대립을 통해 인간 세상을 공개함으로 인간의 모습을 더욱 정직하고 명쾌하게 그려내리라 기대된다.







유연한 生命力, 그리고 감동어린 WAVE

許炯萬 (詩人 / 木浦大學敎技)



愼丈鏞의 작가정신은 투철한 삶의 의식 속에서 그 빛을 드러낸다. 그만큼 그는 온몸으로 자연에 몰입하며 자연과 하나 된 정신이 현실로 돌아올 땐 재발견된 새로운 자연미를 화폭에 펼치곤 한다. 따라서 그의 작가정신 앞에서 창조된 자연은 사실적이고 직시적이며 한편으로는 묘사적인 듯 하면서도 기실 꼼꼼히 그의 작품을 대하노라면 보는 이 마다 모두 (愼丈鏞만이 갖는 自然)에 빨려들어 함께 리듬을 타고 함께 출렁이는 미묘한 환상에 젖기 마련이다. 아마도 나의 그림을 볼 줄 아는 눈 (또는 마음의 눈)에 이상이 없다고 장담한다면 그 이유는 틀림없이 단순한 색채 앞에 내가 서 있는 게 아니라 우주의 대자연 앞에 서 있음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며, 꽉 짜여진 틀(액자) 속에 갇힌 사물만을 바라보는게 아니라 함께 숨을 쉬지 않을 수 없는 우주의 태자연의 일원으로 바라보는 만큼 손끝이나 붓끝이나 기교만으로 그림을 그리는게 아니라 온몸으로 투철한 삶의 의식 속에서 우러난 작가정신으로 자연미를 재발견함에 가치가 있다.
우리가 주지하다 싶이 愼文鏞은 6O년대 작가이다. 그의 작가생활은 l967년 (薪人藝術穴展)에서부터 출발한다. 나는 평소 어느 화가의 작품전이든 (야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관계하지 않고) 제법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감상하기를 즐겨하면서도 유독 팜프렛 맨 뒤에 즐비 하게 적혀진 수많은 약력을 별로 달갑게 생각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서 愼丈鏞에게 있어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지만, 그러나 10년 세월을 가까이서 그리고 한 직장에서 또는 위 아랫집에서 살면서 누구보다도 그의 그림을 가장 많이 보아왔고 그의 피눈물 나는 작업과정과 고뇌의 모습을 지켜보아 온 터인지라 이미 4차례에 걸친 개인전(국내에서 2회, 일본에서 2회)이나 7차례에 걸친 국제초대전, 그리고 1백여 차례에 걸친 각종 단체전 초대전을 통한 그의 작가적 역량과 평가는 새삼스러울것이 없어, 최근 '88올림픽대회 기념 스포츠 미술 엽서 초대전'에 선정되기 까지 적어도 내가보는 愼文鏞은 투철한 삶속에서 우러난 작가정신으로 오늘을 살아 가고 있다고 믿어 오늘의 이 WAVE테마 전시가 그의 작가적인 모든 것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오늘의 작가 愼文鏞이 추구하는WAVE(물결) 의 테마정신은 무엇인가.
나는 한때 愼文鏞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다그친 적이 있다. "너는 왜 밤낮 물결만 그리느냐 물결과 무슨 웬수라도 졌느냐“고 그러나 지금은 그에게 있어 (물결)은 적어도 하나의 신앙이며 그의 삶임을 뒤늦게야 깨닫고 그러한 무식한질문을 안하기로 작정하고 오히려 격려하며 동참하기에 이르렀다.
돌멩이 하나만을 위하여, 물방울 하나만을 위하여, 잉어만을 위하고 게만을 위하고 혹자는 산 하나만을 위하는 자기 개성적인 창조적 투시에 일생을 바치는 수많은 작가들 속에서 오로 지 수년 동안을( 물결) 하나에 생명을 거는 듯한 그의 순교자적 자세를 보노라면 방정맞게도 "저놈은 저 물결 속에 휩쓸려 떠내려 가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되는 그의(물결)테마.

미술평론가 金仁煥교수는 l984년 그가 光州 玄山미술관에서의 개인전 때 "닫혀진 세계에서열려진 세계로의 전환에 대한의지“를 담고 있는 그의 물결은 "인위적 지경을 맛보기 때문일 것임이 분명하다. 愼文鏞은 그만 인 꾸밈이 없는 시공을 초월한 다채로운 자연현상의 찰나를 감응케하는 탄력“이 있다고 평했으며, 그 다음 곧 이어 서울 選畵廊에서의 전시에서 그의스승인 弘大美大 李逸교수는 미묘한 색조의 진동과 그것과 노니는 광선으로 물들여진 때 묻지 않을 감성의 세계" 라고 칭찬한 적이 있다.

그후 3년 뒤인 오늘, 愼文鏞의 (물결)은 얼마만큼 변모되고 어떠한 의미를 추구하고 있는가. 결론적으로 그의 (물결)은 살아 숨쉬는 생명력, 바로 그것이 창조정신에 있다. 흔히들 인생을 물결에 비유하거니와 그래서 J.틴달은 “인생은 연속적인 두개의 순간에도 서로 다른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 물결" 이라고 말했듯이 愼文鏞의 (물결)은 우리네 인간의 삶 그 자제의 전부를 표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며 물결도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동질성 속에서 획득되어진 순수무구한 생명성의 근원을 발견한 작가정신의 높은 안목에 다름아니며, 예리한 감수성에 다름아니며, 오직 유일하게 그만이 갖고 있는 깊이 있는 사고력과인생관, 세계관의 형상화이다.

(물결)은 잠시도 가만히 멈추지 않고 어떠한 형태로든 동일하지 않는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자연의 섭리 속에서 빛살에 따라 색채의 양상이 다르고 바람에 따라 흔들림의 추임새가 다르다. 바로 여기에 愼文鏞이 만지는 (물결)의 다양한 촉감도 우리는 함께 공감 할 수 있어 우리는 그의 (물결) 앞에 서면 감동을 받는지도 모른다.
한때는 화면 가득 넘실대던 (물결)이 보는 이를 빨아들여 촉촉하게 젖어들도록 하던 그의 수법이 이제는 멀리 수평선을 보게 하고 드넓은 무변광대함 앞에서 보는 이를 되돌아보게하는 관조적 숙연함을 맛보게 까지 하는 그의 변모된 작업은 아마도 그가 나이 4O에 들어선불혹의 자아성찰의 원숙한 경지이리하고 생각해 몸도 크게 잘못은 아닐 것이다.
하여, 그의 사면이 넘실거리는 (물결) 한 가운데에 둥둥떠서 읊어보는 나의 이런 싯구 하나쯤도 값이 있으리라.

저리 혼들리고도 남는 것이 삶이라면
저리 넘치고도 남는 것이 희망이라면
우리네 기다림은 어디서 만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