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수 조각가



2016년 3월 끝자락에 잊혀진 줄 알았던 제자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젊은 날 교수로서 첫 부임지로 발령받은 광주시 조선대학교 시절의 86학번 여대생이었다.

당시 미술대학에 조소과가 신설되어 열정 하나로 부풀었던 나는 그때의 모습들을 보석 상자인양 간직하고 있으며 가끔 회상하곤 했었는데, 따뜻한 봄날 후리지아 꽃향기처럼 순수했던 그녀가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첫 작품전을 하겠노라고 인사말을 부탁해 온 것이다.

전혀 생각지 못했기에 무슨 말로 제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으며 작품의 의미를 알아낼 수 있을 런지 기억을 더듬고 지난 일들을 떠올려보니 그저 아름다운 것들만 가득하다.

나의 지도아래 조각가를 꿈꾸었던 한 여대생은 졸업과 함께 결혼하였고 한 남자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서 가정에 충실했을 것이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그녀의 나이 50을 코앞에 두고 무엇이 어떤 파문을 일으켜 의식의 세계를 흔들어 놓았는지 잠시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순간의 기우일 뿐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놓고 번민하며 자아를 확립하기위해 접어 두었던 꿈을 조심스런 몸부림으로 드러내고 있지나 않았었는지, 조각이라는 학문에 매료되었던 그때를 생각하면서 그녀는 작가의 대열에 합류하고자 과감하게 두드림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가장 적절한 시기에 새로운 출발점에 선 것이라고 나는 아낌없는 환호의 사랑을 보내면서 그 가능성에 애정을 담아 기쁨을 전하려한다.

나는 그녀의 작품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 카톡으로 보내온 사진으로 보았을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낌이 좋다. 느낌이 달랐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리라.

파워 있는 작품들은 스승을 감개무량하게 하였고 무던한 외로움을 마음 깊이 다지며 작품과 많은 교감이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모름지기 예술가의 작품은 알게 모르게 그 작가를 닮아 있다고 한다.
그럴 것이 그 과정이 작가의 의식세계를 대변하기 때문에 보편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작가들의 작품이 다 그렇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겠다.

여기서 내가 잘못 해석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작품이 우수에 젖은 듯 느껴오는 것은 왜일까?

인간과 자연을 Enigma로 전개하려 시도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어디서 본 듯한 시선들을 자기화 하려고 애쓴 흔적들이 표출된 것인지 모르겠다.

이제 스승으로서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물론 모든 예술가들이 그런 생각 속에서 작품에 임하겠지만 우리 조각하는 사람들은 작품마다 생기와 영혼을 불어 넣기 위해 작업하는데 사람의 육체를 집이라 한다면 그 집안에는 생기와 신, 영, 신령이 있고 혼이 있다고 한다. 혼은 육체를 돕고 영은 혼을 돕는다는 것이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나는 그녀의 작품을 보면서 잠시 깊은 사색에 들었다. 그리고 전하고 싶었다.
모든 작품이 인간의 육체라 생각하고 생기와 혼을 불어 넣는 연구를 끈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비로소 작품이 관객과 마주했을 때 대상 없이 중얼거리는 듯, 대화의 충동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태초에 하느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어 입김으로 생명을 불어 넣으셨듯이 추상 작업에선 더욱 세심한 섬세함이 필요 할 것이다.
혼은 육체를 돕고 영은 혼을 돕는다는 말처럼, 건전한 사고와 사상 속에서 작가로서의 길을 다져가며 걷기를 부탁하겠다.

작품 중에 하늘저편 저 멀리 시선을 멈춘 채 기다림의 여정을 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어쩌면 모딜리아니를 연상하고 만남과 이별을 간직한 작품들이 인간과 자연이 거산을 통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주고 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면 여러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세계를 확고히 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외롭고 고독한 작업과정에 익숙해지면 본인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4월 후리지아 향기를 날리며 설렘의 화려한 외출을 단행한 그녀에게 작가로서의 첫 두드림이 벅찬 감동의 윤활유가 되어 더불어 숲을 이루듯, 잠재하고 있던 풍부한 역량을 맘껏 즐기면서 조용히 소망하는 작가의 길을 걸어갔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한다.

마음가득 정을 담아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말!

스승이라고 잊지 않고 기억해 주심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2016년 4월













항상 그 자리에2, bronze, 56 x 24 x 21(h)cm,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