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s Note




나는 지금의 이십대를 ‘미디어 세대’라 특징지었고, 나의 작업은 이들의 정체성을 탐구해 가는 과정이며, ‘내 청춘’의 기억들 또한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다.
‘미디어 세대’는 미디어들이 생산해내는 온갖 이미지들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세대이다. 대중매체가 만들어내는 허구의 이미지는 지금의 이십대의 삶에 그 어떤 이미지보다도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고, 이들은 영상 매체 이미지를 통해 얻어진 시각적 정체성을 의식 또는 무의식 속에 각인시킨다. 작품 속의 인공적인 화사함과 형광빛의 ‘미디어 세대’ 이미지는 지금의 이십대들이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아이돌 스타의 허구적인 아름다움이 내재화된 것일 수도 있고, 매 순간 셀카를 찍고 ‘뽀샵’을 하면서 자신이 닮고자 하는 스타에 대한 무의식적 욕망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1990년대 후반 아이돌 그룹의 등장과 월드 와이드 웹 (WWW)으로 연결된 세계에서 급속히 팽창한 대중매체의 화려함은 우리 사회의 미의식, 젠더 정체성, 소비방식 등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미디어 세대’의 등장은 새로운 문화 흐름의 상징이라 할 것이다. ‘미디어 세대’는 유행의 최전선에 서 있는 소비자이며 동시에 노동시장의 최약자이기에 정치 경제 사회의 여러 이질적인 맥락들이 교차한다. 이는 때때로 서로 무관해 보이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놀이로 나타나기도 하고, 가볍고 파편화된 개인주의 군상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방황까지 가볍다고 할 수는 없으며, 그들의 방황은 모든 경계를 허물고 있다. 젠더·민족·인종·국가·종교 따위의 관념들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문화 개념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은 N포 세대라 불리는 것을 거부한다. 연애 결혼 취업 등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얽매이지 않으려 할 뿐이며, 새로운 길을 찾아 나름의 좌표로 움직이고 있다. 그들은 대중 미디어의 영향에 주체성을 잃고 미디어적 외모로 규격화하는 듯 보이지만 오랜 관습을 뛰어넘는 새로운 문화의 주인공들이라 하겠다. 그렇기에 그들이 꿈꾸고 있는 ‘공백의 시간’은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응축의 시간이다.

‘공백’은 이처럼 기존의 질서와 고정관념의 표면이 일그러지며 균열이 발생하는 순간에 출현한다. ‘공백’은 기존 질서의 부재이며, 우리가 의존하던 상식의 파괴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규정과 관습에 젖은 사유를 정지시키는 정신의 분열이기도 하며, 새로운 질서의 탄생 순간이라 할 수 있다. ‘공백’은 무의식 속에 존재한다. 무의식은 독자적인 마음의 구조를 말하고 특정 패턴의 반복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기억이란 베르그송의 말대로 ‘과거 이미지들의 존속’이기에 청춘의 기억들은 어떤 계기들로 인해 불쑥 떠오른다. 우연히 듣게 된 노래 한 자락, 영화 속 한 장면, 한창 청춘의 시기를 즐기는 아들의 모습과 무수한 이미지들이 떠돌아다니는 인터넷 공간에서 내 기억 저편의 경험들이 반응하는 것이다. 이미지는 또 다른 이미지로 이동하고 과거의 기억들은 현재의 관점에서 포착된다. 선택된 이미지들을 가져다 새롭게 구성하고 새로운 칼라를 입히면서 내 안의 청춘과 마주하기도 하고 현재의 청춘들과 만나기도 한다.

불쑥 떠오르는 기억들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무의지적 기억’이며, 순간에 정지된 이미지들은 무작위적이고 일정한 형식이 없다. 과거의 기억과 경험들은 현재를 파고들며, 현재는 과거의 이미지들을 불러온다. 나의 작업은 현재도 과거도 아니며 객관도 주관도 아닌 예술적 감수성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과거와 현재라는 두 시점보다 훨씬 본질적인 그 무엇을 발견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처럼 흩어져 있던 이미지들은 어느 순간 연결되어 이미지 별자리로 탄생하고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낸다.

결국 나의 작업에는 스무살의 보편성과 지금을 사는 이십대의 특수성이 교차하고 있으며, ‘미디어 세대’ 이미지를 통해 현재 우리의 시대정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