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graphy

    Park Hyungjin


    Park Hyungjin was born December 10,1968 near the Han River in Seoul Korea and he was the first-born of two sons and one daughter.

    Time he was born just 18 years after the Korean War started in 1950. This time was fighting a war with postwar recovery and poverty in Korea. His father provided for his family by working as a taxi driver after moving to Seoul from Busan where he worked as a salaried man. Park Hyungjin started school in Heukseok-dong in Seoul. He was as a boy who was introverted and was tenderhearted. And He liked to scribble more than to study.

    When he started elementary school economic development started in earnestly in Seoul where the wounds of the war were still quite evident. He graduated elementary school, middle school and high school and he entered Dept. Painting College of Art in Suwon University. He was at college it was time of a pro-democracy movement in Korea. Political concept was collided each other and a pro-democracy movement was fierce in college during a pro-democracy movement against the then in place military dictatorship. Democratic art was in fashion at this time.

    It was the picture which it had concept of hard life of laborer and let us struggle against military dictatorship. Of course there was through unconstrained college life you could smell tear gas. after finishing his military service he developed concept for his art for his remaining half of college. He read “Point and line to Plane” by Kandinsky and could have the concept certain “Everything is interlinked” from one sentence in book “All objects have no angle”.

    He created works of art for his senior exhibition which derived were inspired by Jinogui exorcism of shaman faith in Korea. his installation was 15m x 15m. The concept of his artwork was sky and earth and human are interlinked and was installed in corridor of gallery in Seoul and this artwork received fervent response. He rebuilt cowshed to use as a studio with coworkers after university graduation and extended a concept of artwork. But he had to work, painting a mural, stage art and art for movies, for his artwork activity. Meanwhile, he could make wall painting owing to be chosen forthe artwork public contest of Korea landing & housing corporation-sponsored events in 1999.

    The Preexisting concept of wall painting was to paint on the wall but he made a mural all of wall, sculpture and ground in new, nontraditional ways. That is exactly the modeling mural. Spectators could get inside artwork and to breathe with spectators that were the concept of it. After one year he exhibited the 1st solo exhibition in gallery in Seoul. His artworks were installation product using stainless and FRP pigment.

    The Director of gallery was satisfied his artwork which was different other artist’s artwork. And he received a fervent response installation product of relieve concept in the 2nd solo exhibition. Before long, after the 3rd solo exhibition he came to an unfortunate incident. He had various tools, steel artwork and living necessities stolen while he was away for working with movie director. He almost quit but changed his mind, he progressed work painting on plane as depart from his usual way of working. The paintings were expressed concept of installation artwork. He continued to expand his concept as using thread, mesh stockings, beads and mother-of-pearl etc. on plane.

    This artwork was chosen for Agora gallery in Chelsea, New York and two artworks of three artworks were an important issue. His direction of work will be combined painting on plane and installation art. And He will continue to expand art concept which have only his own and will created new artworks.





    박형진


    박형진은 1968년 12월10일 대한민국 서울 한강 옆에 있는 곳에서 2남 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박형진이 태어난 시기는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폐허가 된지 18년이 흐른 시절이었다. 이시기는 한국이 전후 복구 및 가난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던 때이다.

    박형진의 아버지는 부산에서 회사를 다니다 서울로 올라와 택시운전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했다. 박형진은 이곳 흑석동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박형진은 성격이 내성적이고 마음이 여린 아이였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좋아해 수업보다 낙서 하는 것을 좋아한 아이였다. 서울은 아직 전쟁의 상처가 남아있고 박형진이 초등학교에 입학 한때는 경제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였다. 박형진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흑석동에서 졸업했다. 그리고 수원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게 되었다.

    학교를 다니던 중에는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던 때이다. 정치적 개념이 서로 충돌하고 군부독재에 대항하여 민주화 운동이 대학교 내에서 거세게 일어났다. 미술에서도 민중그림이 대학교 내에서 많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노동자의 힘든 생활과 투쟁하자는 내용의 그림이었다. 자유로운 대학생활도 있었지만 최루탄의 냄새도 같이 맡아야 했다. 학교를 다니던 도중에 전방으로 군대를 갔다. 그리고 제대를 하여 다시 학교에 복학하였다. 박형진이 작품제작 개념을 잡은 시기는 대학교 후반기 시절이었다. 박형진은 칸딘스키의 “점. 선. 면.”이라는 책 한 권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글귀의 한 구절인 “모든 물체에는 각이 없다” 라는 글에 박형진은 “모든 것은 연결 돼 있다”라는 개념을 잡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무속신앙 중에 진오귀굿 이라는 것에 영감을 얻어 졸업작품을 하게 되었는데 높이4m 길이 15m의 설치 미술이었다. 이 설치미술의 개념은 하늘, 땅, 사람이 연결되어있다는 개념이었다. 이 작품은 서울에 있는 갤러리 복도에 설치되었는데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1년간 동료들과 소 외양간을 고쳐 스튜디오를 만들고 작품개념을 확장하였다. 그리고 작업생활을 위하여 벽화, 무대미술, 영화미술 일을 하면서 작업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그러던 중 1999년 대한주택공사에서 발주한 미술품 공모에 선정이 되어 벽화제작을 하게 되었다. 기존의 벽화개념은 벽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형진은 기존의 벽화개념에서 탈피하여 벽. 조형물. 바닥을 전부 벽화로 제작하였다. 조형벽화로 작업을 하여 큰 호응을 얻어냈다. 이것은 관객이 작품 속으로 들어가서 함께 호흡하는 개념이었다.

    그리고 1년뒤 박형진은 1회 개인전을 서울에 있는 갤러리에서 개최하였다. 스텐레스. FRP안료를 이용한 설치작업이었다. 디렉터는 기존의 작가작품과 전혀 다른 작품에 상당히 만족해 했다. 그리고 2회 개인전에는 부조개념의 설치작업으로 비평가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았다. 그리고 2005년 3회 개인전을 끝내고 얼마 후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박형진이 영화감독과 같이 작업을 하기 위하여 스튜디오를 비운 동안 도둑을 맞았다. 각종 공구. 금속으로 만든 작품. 가제 도구 등 모든 물품이 도난을 당했다. 박형진은 그 충격으로 작업을 그만 두려 했으나 마음을 바꾸어 평면회화 작업으로 작업방식을 바꾸어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 평면회화작품에는 그 동안 박형진이 해왔던 설치작업의 개념이 표현 되었다. 캔버스 위에 실. 망사스타킹. 비즈. 자개 등을 써 평면 회화 내에서 개념을 확장시켜 나갔다. 이 작품은 2010년 뉴욕 첼시에 있는 아고라 갤러리에 선택이 되어 전시가 되었고 전시작품 3점중에 2점이 이슈가 되었다. 박형진은 앞으로 작업진행의 방향은 평면회화와 설치미술을 병행할 것이다. 그리고 박형진 만이 가지고 있는 미술개념을 더욱 확장시켜 그만의 작품을 계속 만들어 낼 것이다.






Artist Statement

박형진

초기 작업은 1995년 에 작업개념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칸딘스키의 점, 선, 면을 읽었을 때 “모든 것은 각이 없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다만 우리가 한정지어서 이름을 붙여진 모양을 보고 인식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무속신앙 중에 진오귀 굿이라는 무속의식이 있는데 이것은 죽은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행위이다. 이 행위는 이승과 저승을 같은 선위에서 보는 것이다. 칸딘스키의 “모든 것은 각이 없다”는 모든 분자구조가 모여 만든 형상을 분자숫자가 더 하느냐, 덜 하느냐의 문제이다 는 것이다. 우리는 그 것을 보고 기호화시켜 인식하고 있는 것뿐이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고 죽는다. 그러나 죽는다는 것이 다른 해석으로는 에너지가 이동한다는 해석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나는 이 두 가지 생각으로 “모든 것은 연결이 되어있다”라는 작업개념을 구축하였다.

이런 개념을 기초로 작업방법을 구상하였다. 나무판위에 풍경이나 인물을 그리고 뒤 집는다 아무것도 없는 나무판 뒤에 자유로운 선을 가득 긋는다. 그리고 선이 가득 찬 화면을 보면 선들이 서로 교차하여 형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완벽한 형상을 아니지만 새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 고래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 중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형상을 선택하여 전기톱으로 그 형상을 분리해낸다. 그리고 바닥에 늘어놓고 뒤집으면 그 전에 그려졌던 풍경이나 인물들이 분리되어 새로운 형상으로 나타나게 되고 이 형상을 서로 조합하여 새로운 부조형식의 스토리가 만들어진 작품으로 나타나게 된다. 기존의 내가 보았던 풍경과 인물은 무의식의 에너지를 표현 화 시키는 방법으로 구성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중기 작업은 캔버스위에 실을 뿌려서 작업을 하였다. 실을 선택한 것은 캔버스에 직접 선을 그으면 의식적인 선이 나오기 때문에 실을 뿌려 자유낙하로 안착된 실을 선으로 인식하고 작업을 하게 되었다. 캔버스에 뿌려진 실은 서로 교차하면서 우연적인 여러 형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제일 많이 나타나는 형상을 골라내어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런 작업방식으로 제작한 작품을 뉴욕 첼시에 있는 갤러리에 선보인 적이 있는데 뉴욕에서도 이렇게 작업하는 작가가 없다는 극찬을 받아서 그것에 용기를 내어 작업을 계속 진행하게 되었다.

현재 작업은 작업방식에 변화를 주었다. 캔버스를 눕혀 놓고 실을 뿌리는 기존작업은 떨어지는 실과 공기의 마찰이 비슷하여 나오는 비슷하게 나오는 현상이 있다. 그래서 내 자신을 우주의 신호를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매개체로 삼고 내 자신의 의도된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감각(미각, 촉각, 시각, 후각, 청각)에 의한 선을 그어서 작업을 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주었다. 기존의 방식인 실을 뿌려 형상을 발견해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우주의 매개체가 되어 선을 긋는 방식이다. 캔버스는 우주공간이며 지구의 땅이다. 나는 그 땅에 비료를 군데군데 놓는다. 그 비료는 땅과 섞여 새로운 생명을 나타나게 한다는 개념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Park Hyungjin

The reason I use mesh stockings and thread for my artwork

The reason my artwork made of mesh stockings is due to curiosity about the reason why women wear stockings. While riding the subway I saw women wearing stockings. Was it to show or to hide? Was it due to a desire to subtly show beauty while hiding imperfection? The stockings revealed subtly and covertly what was underneath them.

It was effectively sex appeal. The stockings were a way for them to convey “look at me, please” or “I am so beautiful.” So, mesh stockings play a role in making legs look better by emphasizing a rhythmic line and elasticity for women’s legs while simultaneously looking mysterious.

I put focus on the movement of the line's elasticity and used it to give the impression of space with these characteristics. Although made by mechanical movements, my work is influenced by thought and perception. The lines made by hand were limited by my arm’s angle and wrist's actions. But if thread was thrown in the air, the line was expressed naturally influenced by physics. Thus, my artwork is made of thrown thread.

The lines intersect to show random shapes. So I work with these shapes. At its core, my art is made by simple actions.





박형진

작품제작에 있어 “망사스타킹과 실을 쓰는 이유”

작품제작에 망사스타킹을 쓰게 된 이유는 내가 지하철에서 앉아있을 때 여자의 다리를 보게 되었다. 그때 생각이 여자가 스타킹을 신은 이유가 보이기 위해서 신을까 감추기 위해서 신을까, 아니면 거친 것을 숨기며 은근한 아름다움을 내보이려는 욕망이 있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기 때문이다.

판타롱 스타킹은 늘어나면서 그 속의 물체를 은근하고 은밀하게 드러내 보이는 느낌이었다. 섹스어필 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것은 “나를 봐주세요.” “나는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라는 홍보를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망사스타킹은 여자의 다리에 선의 율동성과 신축성을 더하여 다리를 돋보이게 하며 선위에 있는 다리를 신비롭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나는 망사스타킹의 신축성에 의한 선의 움직임에 초점을 두었다. 그리고 이 망사스타킹의 특성을 우주의 공간감을 나타내는데 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작품제작에 실을 쓰게 된 이유는 선을 자유롭게 긋는다 해도 나의 팔의 각도와 손목의 움직임의 한계성. 손가락의 움직임에 의해 만들어진 선은 기계적인 운동에 의해 만들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지각에 의해 통제를 받는 영향이 포함 돼 있는 것으로 생각 되었다. 그러나 실을 공중에 뿌리면 물리적 영향에 의해 선이 자유롭게 나올 수 가 있어서 선을 캔버스 위에 뿌려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선들은 서로 교차되면서 우리가 인식 할 수 있는 우연적인 형상으로 나타나게 되고 나 자신은 그 형상을 이용하여 작업을 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행동에 의하여 나오는 우연성을 작품제작의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Artist Note

    Park Hyungjin

    I think the accidental shapes made by randomly tossed lines are signs predetermined by law of universe. The shapes are the result of certain behaviour in the absence of consciousness and my works are created with those shapes.

    Most of my work is created out of intersections of free lines which are the signs of law of universe.

    I express my emotions and feelings with various media. When I toss the strings onto canvas, I try to eliminate my consciousness as much as I can. The tossed strings are not affected by my conscious will but randomly entangled each other and create shapes on canvas. I think that is created by invisible energy and spirit, the law that I am not aware of.

    Lines intersect each other and create accidental shapes. And the shapes are observed and determined by our preconceived ideas. They also represent ‘exaggerated shapes and pictoriality’ as if animation does. Being not in the realm of rational formulas, they provide us a clue to new narratives. Those shapes came from my subconscious which is reflection of the universe. I consider the shapes are the various signs of the universe.

    My current works are about discovering random intersections and tangles of strings when they tossed onto canvas. Through myself as a mediator, the feelings and emotions of the day are projected on the free lines which is again linked to meaning of life. Each viewer is to have different interpretations on these lines depending on their perspectives because they are also the elements of the universe. Some elements disagree and destroy each other but that might be the crucial step forward for the birth of new elements.

    박형진

    자유로운 선의 교차에서 나오는 우연한 형상들은 이미 만들어진 기호에 따라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만드는 체계는 우주에 존재하고 있다. 의식적으로 그어진 선이 아니라 특정 행동에 의해 나온 의식이 관여되지 않은 선으로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

    나의 모든 작품은 자유로운 선들이 교차하면서 나타나는 형상들로 이루어진 것들이 많다. 그것들은 우주의 신호로 나타내어진 형상이다.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물감과 여러 재료로 표현한다. 그 화면위에 자유롭게 실을 뿌리면 실은 낙하에 의해 서로 교차하며 엉키게 된다. 이 실을 공간에 낙하시키는 것은 나를 최대한 배제시키기 위해서 이다. 낙하된 실은 나 자신의 의식의 배제로 얻어진 선들로 나타난다. 선들은 나의 인위적인 의지에서 나온 것들이 아니고, 영혼, 우주의 기, 등 내 가 인식하지 못하는 체계에서 나온 것 들이다.

    이 선들이 서로 교차하고 어우러져 우연한 형상을 만들고 형상들은 인식된 관념 안 에서 이름 붙여진다. 또한, 그 형상들은 만화의 특성인 “형태의 과장과 희화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이성의 정형성을 벗어나서 새로운 이야기전개의 실마리를 전해준다. 이런 형태들은 나의 무의식속에서 우주의 신호에 받아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주의 기호로 생각하며, 그 형태들은 다양하게 나오게 된다.

    현재의 작업은 실의 자유낙하에 의한 엉킴에 의한 형상을 발견하는 작업방식에서 우주의 신호를 내 자신이 매개체가 되어 나타내는 감정의 선을 그리고 있다. 그날의 감정을 그 대로 투영하여 우주에서 느껴지는 신호를 표현하고 자유낙하의 실로 표현되어지는 선을 나타내어 생명의 의미가 담겨있는 연결고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선이 서로교차하면서 나타내어지는 형상은 작품을 보는 사람마다 다양하게 다가오게 된다 그것은 그 사람이 생각하는 데로 보여 지기 때문이고 이것은 사람들도 하나의 우주의 요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맞지 않는 요소는 부딪치고 파괴되지만 그 것은 새로운 태동에 있어서 꼭 일어나야 되는 수순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