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라깡의 환상론을 통해 본 다층적 사진유희
1. 백가령은 이번 전시 “Object A”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그것은 사진술이란 무엇인가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그녀만의 답이며 사진적 유희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
“Object A”는 정신분석학자 자끄 라깡의 ‘objet petit a 또는 objet a’에서 차용해온 것이다. 여기서 ‘objet petit a, objet a’는 불어인데 영어로는 ‘object little other 또는 object o’로
‘소타자 대상’을 의미한다. 전시의 제목 “Object A”는 ‘objet a’를 소문자에서 대문자로 치환함과 동시에 영어와 불어를 함께 쓰고 있어 백가령이 라깡의 생각을 차용하여 다층적 실험을 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특히 전시 공간적 구성과 작품 배치에서 잘 드러나는 정신분석학적 환상에 대한 사진적 실험은 백가령만이 할 수 있는 유희이다.
2. 라깡에 의하면 인간은 어머니 같은 대타자(the Other)에 의해 성장되면서 주체 인식이 피동적으로 형성되는데 이것이 자신이 가진 본능적 자아 인식과 다른 것을 느끼면서 환상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러한 환상은 자기가 가질 수 없는 대상(소타자 대상, objet a)을 가지도록 갈구하게 만드는 2중적 모순을 뜻한다. 소타자 대상(objet a)은 주체가 가지고 싶은 대상이지만 결코 실제 대상물로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인간은 성장하고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육체의 일부가 상실된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때 여자 아이가 남성기를 가지려고 하는 것처럼 이 상실된 대상을 메우거나 되찾으려는 2중적인
모순 속에서 이 환상의 소타자 대상(objet a)을 만나 상실을 견뎌내고 대체하려 한다는 것이다.
3. 백가령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전시공간을 설계하고 대타자(the Other)와 소타자 대상(objet a)의 관계를 보여주는 전시물들을 배치하여 다층적 결과물인 “Object A”를 완성한다. 전시공간은 3층으로
구성되었는데 밖의 복도(의식 상징)에는 색이 입혀진 사진들이 진열되고 문이 닫힌 어두운 전시장(전의식 상징)에는 작은 전등들과 조각상과 사진 등이 벽을 따라 진열되고 반투명 문 너머 가장 깊은 곳(무의식 상징)에는
내밀한 작업실이 있다. 이것은 의식·전의식·무의식의 3층 구조를 상징하는데 각 구조에 맞도록 전시내용물들을 배치시켜서 보는 사람들도 작가의 지적유희를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같이 즐기게 된다.
4. 겉으로 드러난 의식을 상징하는 밝은 복도에 전시되는 평면 사진작품들은 내적 환상의 분출물들이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대타자에 의해 형성된 2중적 모순으로 인해 나타나는 환상은 왜곡되어 밖으로 표현되게 된다.
이러한 왜곡된 환상을 백가령은 기존의 사진을 흑백의 2개 계조로 단순화한 후 노랑, 파랑, 빨강 색을 입히는 2차원 평면 포스터라이제이션 효과를 이용해서 표현한다. 평면 포스터라이제이션 작업은 그녀가 사진을 환상
표현에 대한 다층적 개념 실험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흑백 치환된 생명력이 없는 이미지에 색입힘을 하는 것은 생명을 불어넣는 것으로 ‘영혼’ 또는 ‘나비’를 뜻하는 그리스어 psyche(프시케)를 상징한다.
이렇게 인간의 환상은 2차원 평면에서 다층적 사진 유희로 승화된다.
5. 전의식을 상징하는 작고 밀폐된 어두운 전시장의 검은 4면에 다양하게 배치된 물건들은 여러 개의 작은 전구들로 비춰지고 있다. 고정된 3차원 구성이지만 관객이 지나가면서 보게 되고 이때 시간성을 느끼게 되어
4차원적인 전시가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꿈속에서 환상을 경험하는 것을 상징한다. 배치된 각각의 물건들은 소타자 대상(objet a)을 의미하는데 모여서 “Object A”를 이룬다.
6. 전시장 안에서는 두 가지가 핵심을 이룬다. 하나는 귀가 들어있는 새장 위에 사슴 두상을 세우고 밑에는 테이블을 받치고 서랍에서 진흙이 흘러나오는 구조물 피사체이다. 여기에 여러 개의 전구로 빛을 비춰서
여러 방향으로 그림자가 보이게 하는 식으로 소타자 대상(objet a)을 다층적으로 구성하였다. 귀가 들어있는 새장은 소리는 물리적 규제를 통과해서 들린다는 의미를 내포하면서 억압을 벗어나려는 자유를 상징하지만
그 위의 사슴 두상은 오히려 영원히 박제된 자유를 보여주어 자유를 원하지만 자유를 쟁취할 수 없는 다중적 모순을 보여준다. 또한 서랍에서 흘러나오는 진흙은 억압된 무의식 속에서 분출되는 원초적 욕망을 상징한다.
새장과 사슴 두상과 함께 보여지는 다양한 모습의 그림자는 대상의 실체와 마음 속 환상이 다양하게 엮이는 다중적 모순을 보여준다. 백가령은 이렇게 하나의 피사체에도 여러 개의 환상과 의미가 다층적으로 엮임을
보여준다.
7. 다음으로 유리 두상을 들 수 있는데 외부에서 몇 개의 전구가 빛을 비추는 동시에 투명한 유리 두상 안에 또 하나의 전구를 설치하여 내부에서도 빛이 나오는 구조이다. 밖에서 비치는 빛들은 대타자의 영향을
의미한다면 내부의 빛은 자아의 본능적 욕구를 상징한다. 투명한 유리 두상과 다중적 그림자와 배경과의 중첩을 통해 형성되는 3차원적 이미지는 새로운 환상 이미지인 “Object A”로 치환되면서 새로운 생명력이
창출된다. 이렇게 새장과 사슴 두상의 관계, 그리고 피사체와 그림자의 관계가 교묘하게 짜깁기되고 유리 두상과 배경의 중첩은 서로 연결되면서 움직임을 유발하고 4차원적 다층의 환상 “Object A”로 완성된다.
8. 마지막으로 전시실의 망사 창문 너머에 수줍은 듯 숨어있는 작업실은 백가령만의 무의식을 상징한다. 거기에는 욕망과 꿈이 숨어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과 꿈으로 긍정의 열정이 이글거린다.
그 열정은 4차원적 다층의 환상이고 사진적 유희 행위인 “Object A”를 만들어내는 동력이다. 그렇게 백가령의 숨겨진 욕망은 창작의 유희로 성취의 희열로 바뀌어간다.
9. 이상에서 보듯이 “Object A”는 의식·전의식·무의식을 아우르는 전시로 사진가 백가령에 의해 환상으로 보여 지도록 기획된 사진적 유희 행위이고 욕망이다, 사진전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촬영하고 보여주는 행위는
사진가 자신과 보는 사람이 반응을 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것은 인간의 무의식적인 욕망이며 라깡이 말하는 타자의 욕망이다. 백가령의 욕망은 보는 사람들에게 강요되지만 유희이기에 즐겁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녀의 유희적 욕망은 장치의 설계에 의해 잘 드러난다. 그녀는 이번 전시에서 어떤 피사체를 세워놓고 여러 각도에서 빛을 주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그림자를 함께 촬영하여 보여준다. 이것은 피사체에 대한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피사체가 여러 각도에서 동시에 보여 지는 다중적 응시와 실체·환상(그림자)의 모순관계를 다층적으로 엮어서 유희적으로 보이도록 한 것이다.
10. 눈으로 ‘본다’는 전통적인 지각경험은 주체의 시점(view point)과 소실점(vanishing point)을 기준으로 피사체들을 비례로 묘사하는 원근법으로 인해 객관성의 근거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라깡은
주체가 눈으로 대상을 ‘보는’ 지각행위와 관계하지 않는 ‘보여 지는’ 응시에 대해 설명한다. 이러한 응시는 (주체가 속한 문화와 사회의 권력관계 등으로 구조화된) 대타자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주체의 무의식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11. 포스터에 보이는 사진에서 피사체는 여러 각도에서 빛이 비춰지는데 이것은 비춰진다는 것과 보여 진다는 것(응시)의 다중적 관계를 내포한다. 즉 빛이 비춰진다는 것은 광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적 대타자의
강요를 상징하고 한편으로는 피사체가 보여 지는 응시 간의 3중 중첩관계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또한 그 결과인 사진을 통해 앞에서 보는 사람에게 밝게 빛나는 피사체와 다양한 그림자가 동시에 보여 지는데 여기서도
대타자의 강요와 응시의 다중적 관계를 볼 수 있다. 빛의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피사체는 대타자로 상징되는 빛에 의해 만들어지는 피동적인 주체를 의미하며 다양한 그림자는 그로인해 일어나는 응시와 환상은
다층적으로 엮임을 의미한다.
12. 백가령의 환상 “Object A”는 플라톤의 동굴 속 이미지를 연상시키는데 플라톤은 감각과 욕망에 의해 왜곡되는 환상을 부정적으로 경고하는데 비해 그녀는 그것을 예술적 유희로 승화시킨다. 또한 라깡이
단선적으로 연결되는 인간의 2중적 모순과 환상의 현상을 설명했다면 그녀는 그것이 다층적으로 엮여서 일어나는 환상의 유희로 발전시킨 것이다. 즉 백가령은 외부의 타자에 의해 길들여지는 인간 주체들이 겪는
다층적 모순과 환상을 사진적 장치와 다양한 표현을 이용해서 유희적으로 풀어내었다. 이러한 장치를 설계한다는 것은 백가령이 고도의 지적 소유자임을 보여준다. 특히 4차원을 이용한 사진적 유희는 사진가 백가령
뿐만 아니라 보는 그리고 보여지는 관객들에게도 많은 즐거움을 주므로 같은 방식을 응용해서 작가가 상상의 날개를 계속해서 마음껏 펼쳐볼 것을 적극적으로 권해본다.
2018년 9월 29일
박순기 (사진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