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의 토폴로지 TOPOLOGY OF GENEROSITY - EL ANATSUI
  
 작성자 : artcelsi
작성일 : 2017-09-26       
 관련링크 :  http://barakat.kr/sub/introduce_detail.php?j_no=27&j_type=0&j_sort=1 [24]










전시명 : 관용의 토폴로지 TOPOLOGY OF GENEROSITY 
전시작가 : EL ANATSUI
전시일 : 2017. 9.27-11.26
전시장 : BARAKAT GALLERY






바라캇 서울이 선보이는 <엘 아나추이: 관용의 토폴로지>전은 작가 한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실제적인 변화의 힘을 조명한다. 현대미술에서 예술의 실질적인 힘에 관한 논의는 주로 사회 참여적인 작업이나 교육 활동, 혹은 선언문을 바탕으로 한 단체 활동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하여 오랜 기간 작업을 지속하며 주변의 삶과 환경의 변화를 이끈 작가의 ‘내적인 힘’, 곧 엘 아나추이의 예술에 나타나는 작가적 태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엘 아나추이의 대표작은 가나 공화국의 마을 아수카(Asuka)에서 소비된 수 천 개의 병 뚜껑을 가공하고 구리선으로 엮어 태피스트리처럼 만든 거대한 설치 작품이다. 그는 이 작업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의 평생공로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전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박물관에 소장되는 등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가나의 쿠마시 소재 콰메 은크루마 과학 기술 대학교에서 예술을 전공한 작가는 전통적인 서양 고전 회화의 기법을 수학하였으나 관습적인 미술 교육에 매이지 않는 자신만의 기법을 위해 노력했다. 나무, 돌, 흙과 같은 주변의 다양한 소재와 매체를 끊임 없이 실험한 엘 아나추이는 버려진 술병의 뚜껑을 가공하여 독특하고 화려한 금속성의 조각 작품을 만들게 된다. 

엘 아나추이는 버려진 병 뚜껑에서 그것을 사용한 개개인의 흔적을 포착하고 이를 직물처럼 엮는다. 이 금속의 씨실과 날실에는 소재의 공급자와 운송자, 작품의 디자인 작업자와 여러관계된 마을 주민의 이야기가 얽혀 있다. 이렇게 마을 주민과 작품을 엮어내는 작업은 그 자체로 작가가 타인과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이다. 쓰고 버린 병 뚜껑은 이를 소비한 ‘개인의 기억’뿐만 아니라 구미권 국가들에 의해 아프리카에 술이 공급되기 시작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키는 ‘집단의 기억’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는 노예 제도와 식민지 시대를 지나는 아프리카의 트라우마적 근현대사를 호출하고 있다. 
이처럼 엘 아나추이의 작품은 개개인의 참여가 엮인 결과물이자, 역사적 시간과 현재의 순간이 교차하는 직조물인 셈이다. 다양한 층위의 내러티브가 결합하여 하나의 그물망을 이루는 그의 작업은 인터넷망으로 연결된 현대의 네트워크 체계에 대한 은유와도 같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예술을 통해 보여주는 관용의 태도이다. 위계적인 중심 없이 각 교점(node)이 연결된 네트워크처럼, 엘 아나추이는 작가가 절대적인 감독관이 되는 것을 지양하고 작품의 제작 및 설치, 감상 등 모든 과정에 타인의 개입을 허용한다. 그는 가나의 마을 사람들을 작업에 참여시키고, 전시 공간에 따라 설치 방식을 변형하면서 관람자에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바라캇 서울의 <엘 아나추이: 관용의 토폴로지>전은 이러한 작가의 관용적인 태도를 표현하고 그의 작품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토폴로지(topology)의 개념을 제안한다. 토폴로지는 20세기 초 수학에서 공간의 이론으로 처음 제시되었는데 이후 여러 분야에서 고정적으로 고착되지 않고 연결된 관계에 의해 변형되는 공간과 대상을 지칭하는 개념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한 공간 안의 물체가 고정적이지 않고 여러 교점의 배치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고 확장하는 성격을 갖고 있기에 중심과 주변으로 나뉘던 힘의 균형이 분산되고,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없어지며 창의적인 관계 맺기가 가능하다는 특성이 있다. 

전시장에서 그의 작품은 토폴로지적 대상에 비유되어, 직각의 전시 공간을 ‘구기고’, ‘접어’변형시킬 것이다. 이 공간 안에서 관객은 작품과 사적인 관계를 맺으며 의미의 확장과 공간의 변형을 더하게 된다. 이러한 토폴로지적 사유는 그간 아나추이의 작품이 아프리카의 민족적·지형학적 분류로 해석되던 것을 넘어 예술을 보는 여러 시점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함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작품은 설치되는 장소의 맥락, 작품과 마주하는 관람자 개개인에 따라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폭넓은 사유의 지평을 열어준다. 이는 삶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으로 보며 이를 작품에 반영하는 작가의 태도와 무관한 우연한 결과는 아닐 것이다. 

엘 아나추이는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새로운 매체의 실험과 또 다른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엘 아나추이: 관용의 토폴로지>전에는 마드리드의 팍툼 아르떼(Factum Arte)기관과 협업한 작가의 프린트 신작도 선보인다. 그의 예술적 실험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고, 본질적인 예술의 힘을 추구하며 미래로 향한다. 삶의 궤적을 통해 일궈낸 새로운 지평에서 엘 아나추이는 ‘예술’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관점을 제안하고 있다.




작가소개

엘 아나추이 El Anatsui (1944~)  엘 아나추이는 1944년 가나에서 태어난 아프리카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이다. 조각에 대한 전통적 관습과 정의를 거부하는 예술적 실험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그는 40 년 간 조각가이자 교수로 활동하며 다양한 정치·역사적 입장을 표방해 온 사회참여적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조각 작업은 술병 뚜껑 혹은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버려진 물건과 같은 소박한 재료들을 통해 제작되며, 작가는 이러한 재료들을 복합적인 아쌍블라쥬로 변형시켜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 낸다. 특히 그의 후기 작업에서 잘 드러나는 ‘꿰매기’와 같 은 작업방식과 의식적으로 사슬톱, 용접용 토치, 전동 공구 등 일상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전통적인 예술의 분류 기준인 조각에 대한 관념을 거부하고자 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아프리카 가나와 서구권, 양자의 시각 전통과 동시대적 삶에 대한 보편적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엘 아나추이의 작품은 런던 대영박물관, 파리 퐁피두 센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샌프란 시스코 드 영 미술관, 워싱턴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 뒤셀도르프의 쿤스트팔라스트 박물관, 동경의 세타가야 미술관 등 세계의 여러 유수한 박물관과 기관들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그의 작 품은 1990·2007 베니스 비엔날레, 2012 파리 트리엔날레 등 다양한 국제 전시 행사에서 소개되어 왔다. 영국의 왕립 미술원이나 베니스의 고성인 팔라쪼 포츄니의 전면을 덮는 거대한 설치작업으로 세계적인 이목을 받았으며,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평생공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