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VE _신형섭 개인전
  
 작성자 : artcelsi
작성일 : 2019-10-30       











전시명 : CAVE
전시작가 : 신형섭
전시일 : 2019. 11. 2 - 11. 15
전시장 : PROJECT SPACE 단독주택 (서울시 은평구 중산동 201-14 03496  010.3264.7357)






어두운 방의 고고학
글: 권태현

어두운 방을 만들고 작은 구멍으로 밝은 세계의 빛을 받아들이면, 그 안에 세계의 상이 거꾸로 맺힙니다. 흔히 알려진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이죠. 그것은 오늘날 사진이나 영화 같은 광학적 미디어들의 시작점으로 여겨집니다. 미디어는 기술과 함께 진보한다는 관념을 따라 우리는 그 어두운 방으로부터 광학 장치의 역사를 쓰곤 합니다. 카메라 옵스큐라가 어떠한 새로운 기술들을 만나면서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해왔는지 시간순으로 나열하는 서술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에만 검색해도 각주가 70개나 달린 문서가 쏟아집니다. 과거의 미디어들은 새로운 기술의 승리로 이어지는 목적론적 서사의 과정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사실 역사라는 것 자체가 그런 방식으로 지금과 지난 시간의 개연을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과 다른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습니다. 진보하고 발전하는 선형적인 시간이 아니라, 지난 시간으로 도약하거나 과거를 현재로 가져와 이야기하는 것 말입니다. 여러 가지 다른 사유의 방법들이 있지만, 푸코는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체계로 엮어내지 않고 지난 것들의 특이성을 그대로 본다는 점에서 이것을 고고학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카메라 옵스큐라의 역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두운 방의 고고학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신형섭의 이번 작업은 그것에 가깝습니다. 그는 여기에 ‘동굴’이라고 이름 붙인 어두운 방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는 동굴과 카메라 옵스큐라와 매직 랜턴과 키네토스코프와 시네마토그래프와 실물화상기와 프로젝터 그 외에도 수많은 어두운 방들이 겹쳐져 있습니다. 여러 시간들이 하나의 체계로 통일되지 않고 공존하는 그야말로 고고학적 공간입니다.

신형섭은 이곳에 자신이 만들어낸 광학 장치들을 전시합니다. 빛을 뿜어 그것이 닿는 곳에 상을 맺히게 하는 기계들이 있습니다. 어두운 방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를 밖으로 투사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일종의 프로젝터일 것입니다. 동시대 미술 공간에서 프로젝터는 너무도 흔한 매체입니다. 보통 프로젝터가 전시장에 놓여있을 때, 그것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수단적 매체에 불과합니다. 프로젝터는 없는 것으로 취급되거나, 가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신형섭의 그것은 전혀 다릅니다. 이미지를 만드는 장치인 그 매체 자체가 오히려 드러납니다. 기계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이미지를 만드는 기계가 모두 작업적 위상으로 포착됩니다.

그 광학 장치부터 살펴봅시다. 작가는 뉴욕의 벼룩시장이나 서울의 을지로, 혹은 이베이 등 인터넷을 통해 오래된 슬라이드 프로젝터나 실물환등기를 사다 모아 조립했습니다. 그것들은 이제 사용되지 않는 죽은 매체들입니다. 또한 조합하는 과정에서 바비큐그릴이나, 파이프 등 전혀 상관없는 다른 발견된 오브제들이 섞여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아상블라주라고 할 수도 있고, 시체들을 기워 좀비를 만드는 부두술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층적인 세계와 여러 가지 시간대가 뒤섞입니다. 신형섭의 광학 장치들은 가장 효율적인 기술로 그 장치의 목적을 구현하지 않고, 다양한 시간대가 공존하며 발생하는 모순을 그대로 품고 있습니다. 예컨대 그것은 고전적인 실물환등기처럼 보이지만, 가장 최신의 LED 조명 없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를 가졌습니다. 과거의 방식을 재현하기 위하여 가장 최신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은 흥미로운 시사점을 줍니다. 그러면서도 그 장치들은 과거의 뜨거운 조명 장치 때문에 필요했던 쿨링팬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의 쓸모는 이제 온도를 조절하는 것보다, 소리를 내어 돌아가며 그 장치의 존재감을 뽐내는 것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쿨링팬이라는 과거의 흔적은 시간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기계 장치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작가가 장치 안에 반짝이는 비닐 등 약한 바람에 움직일 수 있는 물체를 넣곤 한다는 점도 이러한 문제와 연동됩니다. 온전히 어두운 방을 가지고 있어야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장치에 구멍을 뚫어 빛이 새어 나오게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위 블랙박스로 불리는 전시장의 어두운 공간에서도 그 장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형식은 ‘확장된 개념의 시네마’라고 불리는 실험 영화의 전통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앤서니 맥콜의 〈원뿔을 그리는 선〉(1973)은 영사기가 뿜어내는 빛이 벽에 부딪혀 보여주는 상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 작업이 상영되는 연기를 채운 공간에서 평면적인 스크린의 둥근 선은 입체적인 원뿔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한 방식을 통해 프로젝터의 빛 자체와 기계 장치들, 나아가 상영의 공간 자체가 작업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미술 전시에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미디어가 그 모습을 감추듯,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공간 또한 하나의 지지체 정도로 파악되며 우리의 인식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형섭의 어두운 방들은 이러한 공간의 문제를 포함합니다. 그가 만든 어두운 방은 하나의 장치 차원에 머물지 않고 다층적입니다. 개별 작업들 자체가 어두운 방을 가지고 그 안에 맺힌 상을 내뿜는 기계이기도 하지만, 그 장치가 놓여있는 공간 또한 어두운 방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보통의 블랙박스처럼 빛으로 맺히는 이미지들을 더 잘 드러내는 기능도 있지만, 동시에 장치가 놓여있는 공간 자체가 고전적인 카메라 옵스큐라를 연상시키는 인간 스케일의 어두운 방이기에 관객들에게 광학 장치 안으로 들어온 것과 같은 감각을 줍니다. 실제로 전시 공간은 거대한 광학 장치로 작동합니다. 전시장은 바깥으로 빛을 뿜어 건축적 외부에서 볼 수 있는 그림자극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동굴에 들어선 관객들은 건물 외부에서 보이는 그림자극을 만든 장치들의 실체를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러한 지점에서 안과 밖, 그러니까 밝은 방과 어두운 방이 뒤집어지며 광학 장치와 공간, 그리고 건축까지 나아가는 구조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인식의 틈이 벌어집니다.

전시는 그렇게 건축적인 것까지 확장됩니다. 이곳은 오래된 양옥 주택입니다. 동굴로 상정된 이곳에서 관객들은 곳곳을 탐험하듯 살피게 됩니다. 방에서 나가 건물의 뒤쪽으로 이어지는 긴 통로를 지나가야 하거나, 또 하나의 어두운 방인 오래된 창고 안쪽을 키네토스코프 핍쇼를 보듯이 들여다봐야 하는 것입니다. 얼기설기 순서 없이 복잡한 동선은 반지하까지 이어집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일종의 발굴 작업이 됩니다. 그것은 신형섭이 탐구하는 광학 장치들의 미디어 고고학이 되기도 하고, 군사독재 시절 방공호로 만들어진 반지하를 포함한 양옥이라는 한국식 주택 건축의 혼종성 속에서 시간의 지층을 파헤치는 작업이 되기도 합니다.

전시가 내재하고 있는 확장성은 공간과 건축을 넘어 장소의 문제까지 가닿습니다. 이곳의 오래된 주택가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금세 그 흔적이 지워질 수도 있는 곳입니다. 거대한 도시 안의 어두운 방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의 폐허에서 신형섭은 고고학적 광학 장치를 통해 뒤집어진 판타스마고리아를 펼쳐냅니다. 그것이 가지는 모순과 충돌, 다층적인 시간의 켜들은 하나의 역사, 하나의 체계, 하나의 인식을 흩트려 놓습니다. 형식적으로는 비디오아트의 계보와 시네마의 계보, 그리고 조각적 계보가 어지럽게 분산된 경로를 통해 우리 앞에 놓이기도 합니다. 앞뒤, 안팎, 위아래 없이 그것들은 뒤섞이며 과거에 잠재된 현재를, 이것에 들어 있는 저것을, 여기에 뿌리내린 저기를 드러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