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SSENCE OF EXISTENCE _ 최만린
  
 작성자 : artcelsi
작성일 : 2018-05-03       








전시명 : THE ESSENCE OF EXISTENCE
전시작가 : 최만린
전시일 : 2018. 05. 03 - 07. 07
전시장 : 리안갤러리







Choi Manlin

May 3 - July 7, 2018


한국 추상조각의 개척자로서 한국 현대미술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거장 최만린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개인전 <The Essence of Existence>(존재의 본질)가 오는 5월 3일부터 7월 7일까지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열린다.

최만린 작가의 이번 전시 표제인 <The Essence of Existence>는 모든 존재의 본질이자 근원인 ‘생명성’을감각적으로 시각화하기 위해 일평생 
자신만의 독창적 조형언어를 개발하고 그 실현 양식을 모색해 온 것에 대한 상징성과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60여년에 걸친 작가의 예술인생중에서 197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작업한 《태 placenta》 연작과 《〇 zero》 연작을 
중심으로 한 대작을 위주로 구성되었다. 
이 두 연작은 작가의 다른 연작보다도 ‘유기적’ 형태의 추상성이 두드러진 작품들로서 직관적 생명성이 가장 잘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에는 성북구의 지역 근현대 예술가들의 집터 보존 사업의 일환으로 작가의 정릉 자택이 최만린 미술관으로 탈바꿈을 준비하고 있어 
이번 전시의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최만린은 서양미술사의 맥락 안에서 조각이라는 매체를 사용하면서도 1960년대부터 자신의 예술 탐구에서 ‘한국성’ 혹은 ‘전통적’ 정신과 가치를 
어떻게 도입하고 녹여낼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왔다. 다시 말해서, 그는 서구 조각과 차별화될 수 있는 한국 고유의 독창적 조형성의 
확립 방안에 대해 고심하고실험하는 데에 일생을 바쳐 왔다고 할 수 있다. 
일관되고 끈질긴 방향으로 진화하는 그의 예술적 여정을 잠시 돌아보면, 그가 조각가로서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시작한 것은 
1958-65년의 시기에 선보인 《이브 Eve》 연작부터이다. 이브는 기독교 창세기에 등장하는 최초의 여성이라기보다는 한국전쟁 직후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전쟁의 참상을 감내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시대적 표상, 즉 이타적이고 연민의 정서에서 본 보편적 인간의 본질적 상징체라 할 수 있다. 
인체의 자세한 묘사나 직접적 형상의 재현을 배제하고 거친 표면의 표현적 양식으로 나아가면서 인체 자체의 물리적 현상을 탐구하기보다 
존재의 근원적 문제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음이 드러난다. 

1965-77년 동안에는 《천·지·현·황 Heaven·Earth·Black·Yellow》, 《일월 Sun & Moon》, 《천지 Heaven & Earth》, 《아 Grace》 등의 작품을 통해 
인체와의 작별을 고하고 추상조각으로 나아가면서 태극사상이나 서예의 서체를 도입하는 등 한국의 정신문화적 뿌리와의 
결합을 통해 한국미술의 정체성과 형식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애썼다.
생명의 근원적 형태에 더욱 심층적으로 접근한 것은 《태》와 《맥 Vein》 연작을 발표한 1975-89년의 시기 이다. 
이때의 생명은 이전에 관심을 두었던 우주의 원리나 자연의 섭리와 같은 총체적이고 형이상학적 차원이 아닌 인간적 차원에서 원초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는 생명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1987년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보면 《점 Dot》 연작으로 시작해서 《〇》 연작으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 
이 연작들은 선행된 탐구를 모두 함축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개념으로부터의 탈피를 모색한 시기의 작품들이다. 
점을 〇으로 치환하고자 애써온 작가는 ‘무(無)’로서의 점을 확장하여 모든 것을 아우르고 다시 근원으로 회귀하는 형태인 〇로써 자신의 예술 탐구가 완성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작가의 60여 년의 예술 여정을 단 몇 줄로 축약해서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면서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태》 연작과 《〇》 연작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태》 연작은 최만린 조각의 양식적 정점기로서 그의 상징적 조형언어인 살아 움직이듯 꿈틀꿈틀 거리는 
유기적 형태가 가장 잘 드러나는 시리즈 중의 하나다.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마치 생명체가 잉태되어 세포분열을 통해 변태를 거듭하는 것 같다.때로는 둥근 알에서 굴기하여 상하 혹은 좌우로 뒤틀리듯 뻗어 나가다가 둥근 원형으로 응축되기를 반복하며 유연한 곡선을 이루는 생장을 보여 주거나 때로는 자기 복제를 하듯 대칭적 형상으로 나타난다. 이는 모든 존재의 내재적 생명력과 잠재적 메타모르포시스의 역동성이 바로 눈앞 에서 펼쳐지듯 매우 직접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한국 전통의 민간신앙, 제례의식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는 심장의 박동과 같은 장구나 북의 원초적 리듬, 접신한 무당의 무아 상태의 춤사위에서 생명의 강렬한 에너지를 느꼈으며, 이는 곧 생명성이 역동적 조형성으로 실현되는 데에 하나의 원천이 되었고, 이 역동성은 단순히 시각적 감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감각적인 시너지를 유발하여 더욱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다.

《〇》 시리즈는 생명성의 본질에 더욱 천착한 결과물로서 개념적 차원으로부터의 초월적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알과 같은 타원형이나 원기둥과 유사한 형태, 증식하듯 땅에서 돋아나는 새싹이나 단세포의 원생동물인 아메바를 연상시키는 형태, 그리고 〇의 형태에 기반한 다양한 형태로 실현된 《〇》 연작은 값이 없는 수인 제로이자, 도교의 무(無), 불교의 공(空)과 유사한 상태이다. 
원형은 시, 공간적 의미에서의 시작과 끝의 경계가 불분명할뿐만 아니라 우주적 차원의 영속적 순환, 태초의 우주 생성기의 허공의 비어 있는 상태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최만린이 〇라는 제목을 부여한 이유는 반대로 이와 같은 모든 기존의 개념적 의미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이다. 
즉, 대상의 본질을 분류하고 구분 짓는 설명적 개념, 부차적인 관념적 해석을 배제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비움이자 열린 상태를 통해 끊임없이 새롭게 유입되고 환원될 수 있는 잠재적 존재의 충만 가능성만 남게 된다. 이제 나/타자 간의 구별은 무의미하며 단지 보편적 차원의 존재로서만 기능한다.

최만린의 조각은 궁극적으로 청동의 매끈한 질감의 용태로 실현되지만 그가 자신의 손으로 실제로 접촉하며 호흡하고 교감하는 재료는 ‘흙’이다. 
“자연과 생명의 숨결을 흙에 담아서 마음의 울림을 빚었다”는 작가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의 가장 원초적 재료인 토양은 이미 내재적 생명성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작가의 손을 통해 하나의 형상으로 변모하고 또 다른 물질로의 변화를 위한 주형의 기초가 되는 과정, 즉 이러한 예술작품으로서의 수동적 탄생의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단순한 물질을 초월하는 ‘자생적’ 생명성, 더 나아가 ‘우주적 원리’를 드러내기 위한 조형적 수사법이 된다. 따라서 최만린이 다루는 존재의 생명성은 단순히 미시적 관점의 인간, 혹은 물리적 생명체로서의 존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 차원의 근원적 본질로서의 ‘보편적 존재’에 다가가기 위한 것이다. 최만린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마주함에 있어서 모든 기존의 개념적, 이론적 틀을 배제하고 즉각적인 감각의 영역에서 이해해 주기를 당부했다. 
이는 비단 기획자나 비평가들에게만 해당된다기보다는 작품을 감상하는 모든 관객에게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는 무한한 생명력과 우주적 원리로서의 보편성을 가진 모든 존재의 본질을 철학적, 학문적 사유가 아닌 직관적, 본능적 감각으로 즉각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예술작품의 기호론적 분석체계인 기표(記表, signifiant)로서의 형상과 그 형상이 의미하고자 하는 기의(記意, signifié)와 같은 이분법적 접근 방식은 최만린의 작품에서 그 효력을 상실했다. 형상이 곧 의미이다. 즉 잡다한 사념과 복잡한 지식으로부터 해방되어 머리를 비우고 공(空)의 상태로 빠져들어 ‘분석’이 아닌 작품의 형상 그 자체를 가슴으로 '느끼며’단순한 객체를 넘어서는 작품과의 일체로서 동일화할 수 있게 된다면, 최만린이 보여주고자 했던 ‘생명성’의 진정한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시 디렉터 성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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