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MOON YONG SOLO EXHIBITION 신문용 개인전
  
 작성자 : artcelsi
작성일 : 2018-01-06       









전시명 : SHIN MOON YONG SOLO EXHIBITION  신문용 개인전
전시작가 : 신문용
전시일 : 2018.01.12-03.09
전시장 : 효천갤러리 (강원도 홍천군 서면 종자산길 122 힐리언스 선마을)





신문용의 회화미학: 논리적 풍경(Logical Landscape)

김병수(미술평론가)

1. 딜레마로서 논리적 풍경
신문용의 작업은 계산적이다. 이것을 단지 산술적이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화면의 구성과 관객의 시선을 고려했다는 의미를 포함하더라도 애매한 지점이 존재한다. 꼭 사랑 같다. 느닷없는 거리를 측정하면서도 만족하지 못한다. 풍경과 심정 사이에서 벌어지는 매력이다. 그런데 이러한 미적 거리에 대하여 작가는 강변한다. “나는 화면에 나타나는 간격 사이의 의미를 분명히 알아요!” 사건 현장에 대한 확신을 지닌 목격자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어렴풋한 풍경에서 형성되는 감정을 지닐 수 있을 뿐이다. 일종의 논리적 풍경이 드러내는 딜레마이다. 드러나길 바라지만 분명하지는 않기를 욕망하는 갈등의 세계가 신문용의 회화미학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망설임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나 보는 이 모두 우유부단한 경지야말로 나름의 논리를 가늠할 상태일 것이다. 일방적인 위로나 안정은 속임수일 가능성이 높다. 조화는 변화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멈추지 않고 지속적인 변화를 드러내는 화면은 상상의 이해에로 이끄는 힘이 있다. 추상의 능력이 결핍될 경우 현실은 오히려 구체성을 상실한다. 2008년 평론가 윤진섭은 “최근 몇 년간 신문용은 바다 일변도의 작업에서 벗어나 인물이나 구름, 폭포 등등 소재의 폭을 넓히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고 지적했다. 그의 브랜드로 여겨진 ‘바다’ 혹은 ‘파도’ 이후 작가가 보여주는 세계는 소재보다 어떤 존재론적 경지를 겨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회화의 존재론 혹은 존재론적 회화의 입장을 드러낸다. 이때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그의 회화를 알 듯 모를 듯하다. 무언가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있는 것의 정체를 알기 쉽지 않다. 게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미지는 분명하기에 더욱 혼란스럽다. 이러한 영역에 그가 설치한 논리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파악할 때 우리는 다시 그의 의도에 주목하게 된다.

2. ‘실험적 풍경’으로부터
2017년에 내가 만난 회화세계에 대하여 작가는 “자연스런 붓끝의 촉감을 감지하며 화면에 남겨진 수많은 자국은 결국 붓과 먹이 가지고 있는 기본 특성의 물성적 효과에다 자유분방한 붓놀림의 조화가 되는 연속성의 이야기를 담고 싶을 뿐”이라는 대답을 다른 자리에서 이미 했었다. 거의 추상적 점에 의한 풍경이라고 할 수 있는 화면들이 동서양 미술사에서 가끔 나타났었다. 그런데 신문용의 작업 근거는 한지와 먹이라는 동아시아 미학의 전통적 매체의 접촉으로 환원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물결’에서 변모하는 프로세스를 추적했을 때 이른 지점이 바로 한지에 먹으로 점찍기이다. 모색이 실험과 작업의 근본적인 노동으로 성찰을 이루는 순간이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최근의 작업이 새로운 스타일로 나타난데 대한 힌트를 이미 그는 오래전에 간직하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1994년 미술평론가 장석원의 증언을 들어보자. “우리는 그가 ‘바다작업’을 하기 이전 1970년대 중반의 그의 실험 작업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당시의 그는 물감을 뿌리고 또 린시드 기름으로 녹여 흘러내리게 하는 과정을 반복해 마치 갈대밭 같은 평면을 만들어 냈었다. 그 후 그는 평 붓으로 무심하게 붓질을 해서 칠해진 부분과 안 칠해진 사이의 미묘한 관계, 그 사이의 물감의 번짐과 흘러내림 등을 연출하는 작업을 했었다. 그로부터 점차 작업이 전이되어 큰 붓으로 칠하고 밀고 닦아서 생기는 우연하고 순간적인 표면 효과를 통하여 잔잔한 호수, 물결을 연상시키는 화면으로 변해갔던 것이다.” 원리로서 세계에 대한 미메시스를 최고의 미학으로 여긴다면 작가의 작업을 감당할 수 없다. 지속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사태들을 묵묵히 그려내는 자세가 역설적이게도 구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작업이 우연에 기대기보다는 나름의 인식론을 기반으로 논리적 전개를 해나갈 때 형성되는 세계를 신문용은 제시한다. 2015년의 작가 발언은 이에 분명히 상응한다. 작가로서 이른바 브랜드 혹은 화풍에 대하여 조금 난삽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변모에 대한 해명으로 진솔한 입장을 드러낸다. “누구나 한번쯤 이러한 작품의 의도와 방황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건 어쩌면 필연의 결과라 생각한다. 작품에 대한 내용의 결과를 의식하는 행위적 표현을 바탕으로 찍어대던 점으로 그대로 이어가는 감성적 행위의 반복성을 가지고 어떤 방향이든, 크고 작든, 가늘고 긴 점의 행렬이 어떤 느낌과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를 바라는 게 아니라 과정에서 나온 행로이기를 바랄 뿐이다. 점들이 화면에 닿는 순간이 하나하나 같을 수 없는 인생의 행로처럼 만들어가는 나의 작품의 형상일 것이다. 그 많은 점들이 어느새 모아지면서 결국 나의 무작위 방법의 작품이 되는 것 같다.” 사실, 작업과 작품 그리고 전시는 삼위일체가 아니다. 전시를 통해 그의 브랜드가 설정된다고 작품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동시에 그가 행하고 시도한 모든 작업이 작품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그 사이들의 어긋남 혹은 미끄러짐을 감당하는 것은 물론 작가이다. 어쩌면 이 모든 프로세스야말로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3. 개인의 미술사
신문용은 1989년의 한 인터뷰에서 당시까지의 작업을 나름 정리하고 있었다. “저의 《물결 시리즈》는 지금까지 진행된 과정을 살펴볼 때 세 시기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제1기는 붓의 원초적 기법을 이용한 덧칠하는 법, 제2기는 수평선의 태동으로 인한 상·하 세계의 표현법, 제3기는 수평선을 연결한 물결의 확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저의 초기 물결에서는 단편적인 물결 테마 위에 시각적인 변화를 주기위해 바둑판 모양의 눈금이나, 혹은 창틀을 캔버스에 넣기도 하고, 또 화면의 균등한 변화를 주어 빛의 변화에 의한 바이브레이션을 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러한 기하학 현상의 극명한 대비 관계도 오래 다루다보니까 단조롭고 생동감이 상쇄되더군요. 여기에서 한 단계 발전된 게 수평선의 태동과 함께 물결도 아침, 한낮, 석양 때마다 느낌이 다름을 이용하여 색상차에 따른 파도에 시간성을 주었습니다. 이 단계가 저의 물결 시리즈 제2기입니다.” 회고적인지 동시대적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그의 설명을 좀 더 들어보자. “수평선이 나오니까 수평선 위, 아래의 서로 상충되는 두 가지 요소가 어떤 대립의 과정을 거쳐 독특한 이미지의 세계로 자립적인 틀을 갖추더군요. 여기에서 저는 새로운 출구를 만나게 된 것이죠. 물결 작업에서 수평선 윗부분을 작게 한 것은 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자연의 현상을 보여주는 것보다 수평선 아래의 파장을 통해 상상을 초월하게 함으로서 수평선 위의 공간에 보다 더 많은 상상력을 가지게 하는 것이죠.” 미술사를 이념에 의한 선험적 입장으로 가정하지 않고 작가를 포함한 일련의 작업 행위를 통해서만 그것이 발생한다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작가 개인의 작업이라는 행위를 통해 구성된 비본질적 미술사를 개인의 미술사라 할 수 있다. 고정된 미술사의 내적 본질은 비어 있고 어떤 매개 장소나 중간 대리를 행하는 작업의 원인으로서 작가는 여전히 자의식이 강하다. 비록 분열증을 겪고 있지만! 모던한 감각과 에토스의 숙명은 지속적으로 미술사의 개인인 작가를 작동시킨다.

4. 섬세한 정신과 기하학적 정신으로서의 풍경
실험적 풍경으로부터 개인의 미술사를 구현해온 신문용은 2013년 극단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무안군오승우미술관 기획초대의 전시는 제목이 《신문용-회화의 세계》인데 본문 84쪽의 도록에서 31쪽까지 이제까지 보지 못했으며 2017년 전시의 근거가 되는 세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트레이드마크를 보여주다 66쪽 이후 다시 윤진섭이 지적한 새로운 소재에 의한 작품들을 싣고 있다. 이때, 그런데 46쪽에 작고한 미술평론가 이일이 신문용의 작업 초기 개인전에 붙여 ‘추상 풍경화’를 언급한 글이 게재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신문용은 자연에서 출발하면서 그것을 본래의 의미에서의 ‘추상’을 한다. 즉 ‘추상화’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다는 무변(無邊)의 표현이 되고 물결은 서로 맞부딪치며 부서지는 율동의 생으로 환원된다. 자연의 흔적 또는 그 기억은 화면에 남아있으되 그것은 이미 전혀 다른 별개의 실제, 하나의 표면으로서의 회화적 실제로 바뀌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은 현재 신문용 회화미학에도 유효해 보인다. 정체성을 가능하게 하는 기억 혹은 흔적은 어떤 원형의 상징이다. 그것은 물리적 자연이라기보다는 추상으로서, 혹은 관념으로서 구성을 의미한다. 흔적 또한 희미한 기억의 증거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분명하고 또렷한 삶의 증거이며 추억이다. 이러한 정신을 우리는 섬세하다고 부를 수 있다. 신문용이 지금 우리에게 보여주는 화면은 섬세하다. 그리고 나름의 논리를 구축하는 기하학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현실에 대한 재현이 아니라 섬세하고 기하학적으로 구축하는 논리적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ps.) 작가와 인터뷰를 마치고 작품론이 완성되는 사이에 신문용은 진행중이던 신작들을 마무리 했다고 알려왔다. 훨씬 더 본격적인 풍경의 면모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동아시시아 회화미학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산수의 정취를 풍기고 있어 거의 동서 비교미학의 경지를 방불케 한다. 인식론적 논리와 의경이라는 마음 속 뜻을 적절히 결속시키는 화면을 구축하고 있었다. 풍경과 산수가 접속하는 기하학적이고 섬세한 다층적 문화의 회화를 창출하는 것이다. 기어코 논리적 풍경이 어떤 풍격에 다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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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ssed, Acrylic color on canvas, 72.7 x 53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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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ssed, Acrylic color on canvas, 145.5 X 97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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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ssed, Acrylic color on canvas, 162.2 X 112.1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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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ssed, Acrylic color on canvas, 162.2 X 130.3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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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ssed, Acrylic color on canvas, 145.5 X 97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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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용 SHIN MOON YONG

신문용은 1947년 광주(光州)에서 태어났으며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1984년부터 현재까지 45회의 개인전(선화랑, 국립현대미술관, 미술회관 동승동, 이마주갤러리, 아트셀시, 오승우미술관, 필립강갤러리, 로빈슨갤러리 뉴저지, JBC화랑 동경, 러브화랑 나고야)을 가졌고 지난 40여년동안 국내외 다수 단체전을 통해 신문용 작품 세계를 선보여왔다. 이 전시들은 그동안 물결패턴 표현방법을 벗어나 점의 본질에 대한 회화의 특성을 가지고 재료와 물성을 통해 새로운 조형성을 만들어가는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주요단체전은 앙데팡당 (국립현대미술관 78~83), 아세아현대미술제 (동경도미술관 일본 79), 벨기에국제현대미술제 (앤드워프 83), 서울국제현대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94), 한국의 풍경전 (국립현대미술관 94), 진경.그새로운제안전 (국립현대미술관 03), 한국현대미술제 (한가람미술관 05~06), 이미지 추상과 자연전 (안양시지스홀 07), 한국현대미술단면전 (주영문화원 런던 08), 원더풀픽쳐 (일민미술관 09), 김환기국제미술제 (G Loop 베를린 10) 등이 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금호문화재단, 국회의사당, 럭거스주립대학, 단국대학 예능관, 홍익대학교등의 다수미술관과 주네부. 신한은행 본점, 한국은행목포지점, 목포 KBS, MBC, KT 등에 소장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