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만든 선. LINES MADE BY NATURE

임태규 초대전, 서울 갤러리 아트셀시





김은숙 (셀시우스/갤러리아트셀시 디렉터)


풍경 좋은 아름다운 양수리의 담백한 구조물에서 작업 중인 임태규는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작업의 근간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 후 유학을 떠난 그는 파리 8대학 및 동대학원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하고 파리국립 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가난했기에 선택한 학비가 없는 나라를 고르다보니 파리행이 됐다는 그의 유학 후 행보를 보면 인물을 이루는 굵은 선과 견고한 손의 용도란 오로지 그가 꿈꾸고 상상되어지는 예술에 헌신했음을 맑은 의식과 풍모에서 짐작 할 수 있다.

이전의 작업은 물감을 뿌리기도 하고, 던지기도 한 격렬한 흔적이 가득한 추상작업이다. 굵고 힘찬 붓질의 생동감은 미래를 향한 불완전한 몸짓이거나 존재를 증거 하기에 안간힘을 쓰는 젊은 날을 연상시키는 작업들로 가득하다. 2000년대 초기부터 시작된 근작은 초기의 추상과는 전혀 다른 임태규 표 자연이 등장한다. 중첩된 능선의 흔적으로 뵈기도 하고 동양화의 수묵 담채화를 보는듯한 산의 풍경처럼 인식되는 작업과 옻칠을 한 것 같은 검은 바탕에 나목의 흔적만 명징하게 자리한 구상작업으로 말이다. 수묵화처럼 보이는 그림은 순지(화선지)에 백색 물감을 매우 연하게 푼물로 드로잉을 하고 건조하는 과정을 반복한 후 손으로 주물러서 원하는 주름(크랙)을 만든 후 물감을 푼물에 담궈 염색하듯 색을 입힌다. 어느 정도 짜낸 후 넓게 펴서 건조 시킨 후 표면에 미디엄 처리(코팅)를 한다.

캔버스나 판넬에 위의 결과물들을 배접 한 후 화면에 필요한 만큼 아크릴 물감을 다시 입히고 여러 차례에 걸쳐 그로스 바니쉬 표면 처리로 마감을 한다. 물속에 던져 놓아도 젖지 않을 마치 랩을 씌워 놓은 듯 코팅된 화면의 산의 이미지는 화선지 결 사이사이 신비롭고도 영험한 기운을 피워 올리며 작가의 의도와 그 사이에 자연 발생적인 우연의 흔적의 이미지가 신비로운 임태규표 자연을 만드는 것이다. 어둠속에서 막 깨어나는 새벽의 까만 산을 연상시키거나, 품었던 태양의 자취로 경외감마저 들게 하는 석양인듯 여겨지는 산의 이미지는 자연 안에 안온하는 태초의 인간처럼 저절로 두 손을 모으게 한다.

‘시각에 의해서 포착된 풍경이기보다는 언어와 문자가 무력해지는 자연의 실제 풍경 앞에서 절망하면서 동시에 그 감동으로 인해 촉발된 역설된 창작의 의지가 어렵게 틈을 벌려 빚어낸 자취, 우연적이고 자연적인 흔적이다.’라고 평론가 박영택 교수는 쓰고 있다.



나무를 오브제로 화면에 상감하듯 박제한 또 다른 작업의 갈래를 보자. 예술가가 남자의 역할로 살아간다는것이 녹록치 않은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간신히 터를 마련하고 우여곡절을 톡톡히 치르며 전원에 들어앉힌 작업실에서 그는 귀국 후 몇 개의 대학 강의와 전시에도 불구하고 유학전과 별반 다름없을 예술가의 삶을 서울의 집과 양수리의 작업실을 오가며 작업 중이다.

거품이 빠진 부동산 시장은 좀처럼 회복세를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이상적인 전원생활의 꿈을 부추기는 불똥은 가평, 양평 일대를 후적이며 오랜 시간 아름답게 안착된 풍광을 하루아침에 갈아엎기가 일쑤였고 아름드리나무의 운명도 별 수 없이 뿌리가 들린 시체 같은 나무더미를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산책을 하다가 어느 날은 마음에 드는 잘생긴 나뭇가지를 어루만지다 아까워 작업실로 가져오기도 하고, 더러 벽에 걸어 장식도 하다가 작업실 한켠에 쌓여지거나 작업하려고 바닥에 놓인 캔버스에 이리저리 배치를 했단다. 언젠가 나무작업으로 설치도 하고 싶다는 그는 느닷없이 생을 마감했을 나무들의 부고를 전하는 진혼제 같은 전시를 꿈꾸고 있지는 않을 까...

나무를 반으로 쪼갠 후 화면에 나목 고유의 형태를 고스란히 증거하고 나뭇가지를 제외한 주변은 아크릴릭 필러와 바인더, 물감, 돌가루를 반죽해서 만든 혼합물들을 채워 넣었다. 건조 시킨 후 물을 뿌리며 갈아내고 화면을 고르며 위의 과정을 반복하며 원하는 두께와 화면을 얻은 뒤 수성인 그로쉬 바니쉬를 물과 혼합해서 절묘한 비율로 얇은 필름이나 랩 두께로 마감처리를 한다. 원하는 광택과 피부를 얻기 위해 8번에서 10차례의 지난한 과정을 쌓은 후에야 채워 넣은 검은 배경은 마치 걸쭉한 블랙 페인트를 굳힌 듯 옺칠을 바른 느낌으로 단단하고 윤기가 흘러 작품전체의 쟝르가 회화라기보다 부조를 화면에 가둔 조각품처럼 뵌다.

굳이 나무라고 재현된 그림이 아니라 시간과 생명이 나무라는 유전자의 물성으로 굳은 자연물을 화면에 따박 따박 안착시키며 작가는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화면 안에서 소진시켰으리라.

갓 맺힌 꽃봉오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검은 배경을 가르며 갇혀있는 해부된 나무는 꽃을 피우기 위해 한껏 물을 끌어 올리던 보드라운 나무의 육체 흔적도, 겨울을 맞을 채비를 할 물의 길을 끊은 식물의 생장도 예리하고도 정확하게 반으로 커팅했다. 단면을 고스란히 화면에 해부하듯 깎거나 박제하며 세월을 견뎠을 작가의 먹먹함이 견고한 화면의 피부에 찰나로 반짝이며 전해온다. 가로로 걸든 세로로 걸든, 거꾸로 걸든 보는 이의 마음대로 나무그림은 어떻게 걸려도 상관이 없다는 그다. 성인이 되어 부모를 떠나 독립적인 개체로 살아갈 그들의 삶을 인정하듯 작업실을 떠나 또 다른 자연인 세상으로 나가는 자식 같은 작품에 미련을 거두려는 그를 본다.





좁은 땅덩어리에 미술이라는 인구도 차고 넘치는 한국 화단에서 그렇게 바쁘거나 영민하게 움직이지도 않고 자신의 세계를 침잠하듯 지속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본인은 체념이라고 말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예술가는 가끔 느긋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임태규 작가를 보며 하게 된다.

현재 강남의 갤러리 아트셀시에서 10월 7일까지 전시중인 임태규는 내년 봄 끄트머리에 또 다른 임태규의 자연에 감염된 일기같은 작품을 덤덤히 부려놓을 예정이다. 넓고도 깊게 이미 그는 자연의 일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유전자와 원류가 같다는 식물의 뼈대를 추리고, 그가 끄는 대로 환영 같은 산 능선의 실루엣에 눈을 가늘게 좁혀 옮겨가다보면 그가 경험했거나 장치한 감정과 합일할 기회도 있을 것이다. 가을이 깊다.

임태규 약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졸업
파리국립 미술학교 수학 (PIERRE BURAGLIO교수 아뜰리에)
프랑스 파리8대학 및 동대학원 조형예술학과 졸업

개인전
2016 갤러리 아트셀시(서울), Cref Gallery (Osaka)
2012 희수갤러리(서울)
2005 갤러리 원(서울)
2004 Dental clinic The GALLERY (서울)
2000 갤러리 원(서울)
1997 원 화랑(서울)
1995 문예진흥원미술회관(서울), 문화일보 갤러리(서울)
1992 LA GALERIE DU HAUT-PAVE (파리)
1991 ESPACE BATEAU LAVOIR(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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