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GUE VIEW



최유희

가볍기도 무겁기도, 부드럽기도 날카롭기도, 빠르기도 느리기도, 흉악스럽기도 아름답기도, 한 그것

우리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타인을 위하는 척 달콤한 사탕을 손에 쥐어주며, 원하는 방향으로 타인을 이끌고 가고 있다. 그것을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억압하며, 주입하며, 현혹시켰던 일들을 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한다.

그것을 만져볼 수도, 맛볼 수도, 볼 수도 없다. 하지만 그 어떠한 것보다도 우리의 감정의 높낮이를 한 순간 끝과 끝으로 배치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누군가가 쉽게 내뱉은 그것으로부터 버티다 결국 넘어진다.

그것에 대한 혐오는 현실이다.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편견 )

맞서는 일은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현실에서는 그 당연한 일조차 스스로가 그럴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한다. 정당하지만 정당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 속에서 버티고 나아가야한다.

그것의 불쾌함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빈정거리거나 냉소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떠한 효과를 드러낼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상대에게 기회를 박탈하고 무력하게 하며, 비판하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행위를 평가절하 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잘 다루어야 한다.

작가는 그것을 통해 느낀 감정들을 화면 속에서 혀의 이미지로 배치하여, 변이와 증식으로 생성된 기생식물처럼 접속과 장악으로 우발적 마주침을 보여준다.

화면 속 뒤엉켜 있는 상황들 퍼져 나가는 형태들은 근원적 동일성이 아닌 이미지 자체만의 개별성을 추구하며, 우리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의 상황 속에서 다가오고 파고드는 그것의 면모를 드러낸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생성 되어 피어나고 흩어지고 흘러내리고 시들어버리고 썩고 변화와 생성으로 윤회한다. 그리는 행위는 긍정적 방법으로 오늘과 다른 나, 또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갈구하는 인간의 단면을 나타낸다.






What’s important? 작품론



최유희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서 갇혀버린 현대인들은 하나의 부속품처럼 획일화 되거나 혹은 페르소나가 되어 버리거나 혹은 나를 어디에서 어디까지 들어내기도 숨기기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함으로 나를 주변의 상황과 물질들이 나라고 착각한다.

다채로운 이미지와 색의 뒤얽혀짐 속의 규칙에서 현대인들이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의 반복적이고 수동적인 삶이 하나의 질서로 나타내며,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중요한 무엇인가를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What’s important?



최유희

파랑새를 따라 언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지금 나는 왜 파랑새를 쫓아 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파랑새를 가까이에서 보지도 못하고 갖지 못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원해 나는 파랑새를 쫓아 왔는지 이제는 전혀 생각도 나지 않는다.

한 소녀는 탑에 갇혀 그 안의 세상이 전부이고 창문 밖의 세상은 공포의 대상이라도 알고 커왔던 그 소녀는 세상 밖에서 온 멋진 소년의 손짓에 금방 마음이 빼앗겨 밖의 세상으로 뛰어 들었다. 단지 소년의 손을 잡고 세상에 나왔던 소녀는 세상 것에 취해 정신 없이 즐기며 허우적 거리게 된다.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었던 소녀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취해 향유하지만 점점 그 것들의 실체가 드러나고 알아가면서 소녀는 탑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손을 잡아 준 소년은 이제 없다.

2019.12월 나는 이제 열병처럼 찾아 온 이 일을 내려 놓아야 했다. 자의적 결정이기 보다 타의적으로 나는 이 상황을 종료해야 했다. 7년이라는 시간을 뒤로 한 채…

2020.1월 나는 실직을 하고, 코로나가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코로나는 주변의 일상의 모습들의 변화를 가져 왔으며, 나 개인으로도 코로나의 여파는 컸다. 주말이 아닌 평일에도 세 식구가 집에 있다. 나의 실직 전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족과 이렇게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고작 1박2일라는 여행이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전부였던 나에게 나에 실직과 코로나는 나의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남편의 업무를 보며, 이런 일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사실도 알게 되고, 아이를 보며 이런 것을 좋아하고 이런 것은 싫어하는 구나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일들로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2020. 5월 아이가 학교를 간다. 코로나로 학교 수업을 온라인 학습을 바뀌면서 아이와 1월부터 지금까지 단짝처럼 시간을 보냈다. 타의적이지만 나에게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실직으로 코로나로 알게 된 행복의 시간들…

나는 실직하고 두려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것을 알게 해주며,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하게 해준다.






다채로움 속에 갇혀 있는 현대인들



최유희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시대로 들어서면서 너무나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어디서나 발견 할 수 있다. ‘과함은 부족한 만 못하다’ 고 했듯이 현대인들이 놓치고 있는 인간성의 상실과 SNS 중독을 비롯하여 보여지기에 급급한 현실 속에서 본연의 모습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나 또한 SNS 속의 타인의 모습들을 보며 희비를 가지고 나의 본연의 삶을 숨긴 채 포장하며, SNS 위에 온갖 좋은 이미지들을 올리며, 포장된 나의 삶을 즐기고, 나도 속이고 남도 속인다. 이런 뒤얽혀 있는 이미지들 속에서 막상 ‘나는 누구인가’ 대해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 무궁한 발전 속에서 바쁘게 순환하고 얽혀 살아가는 ‘현대인’ 들의 삶은 ‘공갈빵’ 같은 것일까 싶다.

또한 솔직함은 무엇일까 생각할 때가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여러 가지 다양한 다름의 요소들의 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서 나를 어떻게 들어내고 표현해야 할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 솔직하게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에 항상 고민이다. 현대인의 이런 여러 상황, 감정의 경계를 작품을 통해 들여다보고 인정하고 또 생각을 진솔하게 표출하면서 화면을 이루게 된다. 결국 이런 하나 하나의 요소들이 모여 작품 전체를 이루는 것이다.

작품들은 표정 없는 얼굴, 복잡한 공간, 반복과 강박이 얽혀 있는 이미지들, 현대인은 반복적이고 수동적인 삶이 하나의 질서로 자리 잡혀 살아가며 복잡함 속에 획일화 되어가는 우리들의 모습들이 이렇듯 개인의 개성을 잃어가며 더 이상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컬러 풀한 색감과 화려한 패턴으로 감추고 드러내고 있다.

마치 카멜레온 같은 보호색으로 드러내고 싶고,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때로는 숨고 싶어하는 방식들로 현대인과 나에 대한 삶의 비판과 치유와 위로를 해주고 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소재인 현실적인 사회문제를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현대인들이 마주한 지친 단면의 일상들 속에서 작품을 떠올리며, 궁극적으로 작품 곳곳에 숨어 나 자신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관객들에게 공감될 수 있고 더 긍정적으로 흥미롭게 위로와 대안을 얻길 원한다.

현대인인 나의 삶에 태도의 방식을 작품에 녹이기 위해 화면을 채워 나가는 다양한 색채화 형태들의 변화는 현재의 나를 인정하며, 더 나은 나를 찾는 적극적인 행위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복잡한 화려한 이미지들은 스스로 들어내려 하나 또 동시에 숨기고 싶은 나의 어정쩡한 마음을 나타내는 장치이다. 형태들의 유사성의 다채로움의 반복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그 속에서 변화와 새로움을 찾는 나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작품 속에서 온전히 나를 들어내고 싶어하면서도 또 감추고도 싶어하는 나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현대인의 단면이다.



The Modern Person Ensnared in Diverseness


Choi, Yu Hee

As we have transitioned from the analog to the digital age, we can frequently discover the modern person struggling in a deluge of information.

As the saying “Want is better than excess” goes, we can spot the modern person living their lives in a world where the only interest is to merely present their outward self through social networking services (SNS) – to which they are addicted - ignorant of their true identity. I myself experience ups and downs while viewing the life of others through SNS, hide my true life, decorate it with a thin veneer, upload positive images of my life, enjoy the false life that I portray, and trick others and myself. It is hard to answer the question “Who am I?” in this blend of jumbled images. The life of the modern person whose life is built on top of endless progress and rushed cycles might be best likened to a “puff bread.”

There are times when we think about what honesty really means. People each have varied elements of distinction. It is sometimes difficult to choose how to express oneself, and it is a constant struggle to determine how much of oneself one should honestly acknowledge. By peering into these various situations and boundaries of emotions that the modern person faces, acknowledging and expressing the thought truthfully, the screen emerges. The amalgamation of these elements forms the entirety of the work.

Through emotionless faces, complicated spaces, images of constraint and repetition, the work presents with colorful impressions and splendid patterns the modern society as a place where the modern person - living a life of repetition and passiveness that forms a sort of order creating monotonousness among chaos – has lost their individualism and humanity.

Like a chameleon trying to hide itself through camouflage, or perhaps like a picture puzzle that expresses the urge to hide, the work offers a criticism, a cure, a consolation to myself and to the modern person. Though the subject of modern societal problems can be quite a daunting one to address, by stimulating the imagination and curiosity, by recalling in the works the facets of everyday life that the modern person faces, by applauding myself in hiding in the work, I wish the viewer to identify themselves with the work, and moreover, to obtain consolation and a solution in a positive and interesting manner.

The act of trying to dissolve my attitude toward life into the work by filling the screen with varying chromatic coloristic shapes can be viewed as an expression of myself trying to acknowledge myself and to find a better self. The complex but splendid images are a device that convey my ambivalent want to reveal myself but at the same time to hide. The repetition of similar but varied shapes is showing my effort to find change and newness in my everyday life, while it is also a story of myself – and of the common modern person - showing my want to fully express myself in my work but at the same time wanting to hide.






Black Rain



최유희

검은 비가 하늘에서 내리고 있다. 곧 끝날 거라 생각했던 비는 더 세차게 내리고 있다.
그 비는 더 깊이 파고 들고 더 깊숙이 더 많은 영역을 확장하며 파고 들었다.
비를 원망하며 더욱 나를 가두었다.
하지만, 그 검은 비는 하나의 일시적인 현상이었지만 그것을 바라보며 더 견고한 틀 속에서 깊숙이 나를 가두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보호막을 가리고 있는 것 같다, 생각과 관념의 틀, 감정과 정서의 틀, 의지와 욕구의 틀, 우리는 이것 안에서 오늘도 숨 쉬고 있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_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최유희

어린 시절 그리기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즐거움의 행위이며, 친구였다. 그래서 뛰어나지도 않은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즐거움의 행위는 10대, 20대 시절 나에게 의무적 행위를 통해 결과물로 검증 받는 누군가를 위한 그리기로 변화되고 말았다. 나를 위한 그리기보다 보여주기와 의미 담기에 더 열중했던 것이다.

그러한 작업들을 난 공갈 빵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그래서 30대에 결혼과 육아를 하면서 쉽게 그림을 놓게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생에 반전이란 항상 있듯이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에게 삶의 위로를 받고 방향성과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기회를 주며, 나의 어린 시절 즐거움을 주던 친구로 나에게 그리기는 조금씩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는 행위는 나에게 종교적.(안식, 위로, 평온, 희망)이다. 화면을 채워나가는 모든 이미지들과 형태들은 변화하고 반복한다.

그려나가는 것은 일상적인 삶의 권태로움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그 행위를 통해 화면을 채워나가는 과정 속에서 현실에서 이상을 꿈 꿀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화면 속에서 다채롭고 화려한 동일한 형태들을 반복시켜 화면을 채우면서 유사성을 드러내지만 그 형태들은 비슷할 뿐 차이가 있다.
반복과 차이를 나타내는 것은 적극적으로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 하려 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것은 익숙한 현상들이 달리 보이기도 하고 새로운 시각은 나를 드러내기도 숨기기도 한다.
드러내기와 숨기기의 방식은 나와 맞닿아 있다.

난 항상 중간이었다. 완벽하게 나를 보여줄 수도 없고 목소리 높여 말한 자신도 없는 바로 나 자신, 뭐하나 뛰어나지 않는 특별함이 없는 어정쩡한 나의 모습이다.
드러내기와 숨기기의 형태들은 화려하게 패턴들로 덮여있으며 그것들은 무언가를 보호하려 숨고 드러내고 숨긴다.

A glorious day는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가려 하는 나에게 주는 희망적 메시지이다.
I love rira, swimming 시리즈는 딸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나약한 나의 모습이 투영되어있다.
이미지들의 반복 속에서 드러내기도 숨기도하며 숨바꼭질을 하며 보호색을 만든다. 아이의 이미지 속에 내가 있으며 나는 상황과 환경에 변이되면서 주변으로 흡수된다.
튜브를 타고 있는 아이는 나이며, 빈약한 튜브는 나의 신념인 동시에 희망이다. 화면을 이루는 모든 것들은 언제 어떻게 나에게 다가올지 모르는 모든 상황이며 나는 어떠한 조건이든 튜브에 의존하며 무조건 전진하며 나아가야 한다.






Human by Hideholic



최유희

Human by Hideholic 은 캔버스의 표면을 덮으며 무한히 증식하는 이미지를 통해 현대인의 ‘위장된 삶’의 모습을 구현한다. 삶 속에서 당면하는 상황에 따라 태도가 변하는 인간의 모습처럼, 본질적인 현대인의 문제, 상처들을 철저히 감추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구체적인 대상 속에서 변이를 일으키며 생성된 이미지들이 대상간의 관계를 얽히게 하거나 위장된 이미지로 마주하여 서로를 기만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화면 속의 이미지들은 대상의 본질에 집중할 수 없도록 외양에만 치중하여 내면의 가치를 격상시키려고 하는 의도가 숨어있다. 또한 그 의도는 매우 위선적인 것으로 상대방에게 흠으로 작용할 약점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 대상위에 번진 ‘이미지’들은 그러한 흠을 감추기 위해 위장한 ‘가면’이 되기도 하고, 마주하는 대상으로 뻗어 나아가 관계망을 ‘교란’시키며, 동시에 상대방이 지니고 있는 것을 탐하여 ‘흡수’하는 역할들을 수행한다.

작가는 화면 위에 그 구체적인 대상 즉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감추기 위해 수많은 패턴들로 뒤덮는다. 그러나 이미지들로 뒤덮는 행위가 반복될수록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빠지는 것이 아닌 뒤덮는 행위에 종속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시작한 그리기는 대상의 구체화를 넘어서 대상을 은닉하게 되고, 감추는 행위 자체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번져나가는 이미지들은 자동기술법으로 그려진 것과 다름이 없다. 의도된 이야기와 의도되지 않은 이미지의 만남은 작가를 자신이 설정한 ‘놀이’ 속에 빠져들게 한다. 작품 속에서 충분히 유희한 작가는 이제 관객에게 일종의 ‘놀이’를 제안한다. 작가는 미리 숨겨둔 ‘보물찾기’에서 이미지 속에 숨겨둔 메시지가 담긴 ‘쪽지’를 준비해두고, 관객은 작가가 숨겨둔 ‘쪽지’를 찾기 위해 끊임없는 시선의 숨바꼭질을 시작한다.

화면 속의 미로를 헤매는 관객은 이내 찾은 순간 놓치는 ‘쪽지’들로 인해 탈력감을 맛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이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작가가 건설한 트릭의 세계가 ‘쪽지’를 찾는 것을 잊을 만큼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시선의 탐닉 끝에 서서히 드러나는 ‘쪽지’의 실체는 작가의 메시지를 전한다.
‘관객’들은 이미지를 전면에 앞세우고 한걸음 물러서 숨어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